런던 날씨를 닮아가서 그런건지...
암튼 매일 우중충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지겨워져서
즐거웠던 추억이나 회상해볼까 해
1. 초등학교 때
극소심을 달리던 나는 저학년 때 친구가 거의 없었더랬다. 반에서 말트고 지내는 사람은 짝꿍과 앞에 앉은 아이 단 2명. 그러다 3학년 때부터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즈음부터 성격이 변해서 친구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더랬지. 토요일마다 고무줄놀이를 하던 성당 마당에서 작은 키에 해보겠답시고 다리를 찢다가 슬라이딩을 한 적도 있고, 4학년때는 캠프에 따라갔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지기도 했었고 5학년때는 반친구들이랑 노느라 성당을 멀리하고 학교 근처 놀이터를 주무대로 삼고 친구네 집을 오가며 노는 재미를 붙였었더랬다. 6학년때는 학교가 파하면 만화방에 틀어 박혀 만화 삼매경에서 벗어나지 못 하거나 친구네 집을 전전하며 고스톱을 쳤다는... ㅋㅋㅋ
2. 중학교 때
입학한 지 몇 일 되지 않아 언니랑 같이 등교를 하는데 처음 보는 지옥버스에 몸을 싣지 못 하고 뒤에 떨궈져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고, 추워서 담요를 가져 갔다가 가정 선생님께 압수당해서 졸업 직전에야 돌려받았다. 2학년때는 교실이 1층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교복치마에 굴하지 않고 늘상 창문을 타넘어 다니며 달타냥 흉내를 냈었고, 학부 농구 리그에 홀딱 빠져서 노트를 사모으고 청소 시간에 텔레비전을 틀어 중계방송을 보는게 일상이었었지. 3학년때는 연합고사가 끝난 후 키 좀 키워 보겠다고 남들 다 교실에서 비디오 보거나 자는데 ㅎ양과 둘이서 맨날 얼음 꽁꽁 어는 운동장에서 농구 연습을 했다. 또, 3년 내내 지각을 코 앞에 두고 언덕을 미친듯이 달려내려가는 것이 삶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나마 우리 학교가 남들처럼 언덕 위에 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3. 고등학교 때
큰언니, 셋째언니 연애코스에 주말이면 덤으로 실려서 섬진강도 가고 청도도 가고 포항도 가고 여행을 참 많이도 다녔더랬다. 고등학교 1학년때는 친구들이랑 태종대에 갔다가 모르는 아저씨가 내 준 돈으로(1인당 2만원이나 했었는데 -_-) 통통배도 탔었고 돌아오는 길에 회비가 든 지갑을 잃어버려서 다들 남은 돈 긁어모아 겨우겨우 대구로 돌아오기도 했었지. 여느 애들처럼 HOT에 혹해서 무수히 많은 자금을 스티커부터 사진 뺏지 잡지 등등에 콸콸 쏟아 부었으며 콘서트 좋은 좌석 확보하겠다고 새벽 2시에 달달 떨면서 은행 문을 지킨 적도 있구나. 밥먹듯이 지각하다가 한 번은 안 걸려 보겠다고 선생님과 지각생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시점에 정문 옆 수풀이 우거진 정원으로 기어들어가서 멀쩡한 길이면 5초면 통과할 거리를 온갖 상처를 다 입으며 30분을 걸려 지나가기도 했었다. -_-;
4. 대학교 때
대학교 다닐 땐 KFC에서 두 달 반동안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덕분에 실명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지 -.-) 동아리 장기출사를 따라 갔었는데 히치 하이킹한 차가 하필이면 생선배달 트럭이라 뭣도 모르고 앉았다가 엉덩이는 축축하게 젖고 하루종일 생선 비린내는 가시지 않았던 경험, 또 ㅎ양과 ㅅ양과 ㄴ양이랑 함께 경주로 하이킹 갔다가 조선호텔에서 균형 잃고 다이너스티 뒷범퍼 10cm 가량 긁고 도주(?)한 사건도 있었고, ㅅ양이 잠시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 ㄱ양과 함께 셋이서 타박타박 걸어 중학교 고등학교 탐방을 갔었는데 매점에서 후배들의 '뭥미?'하는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무언가를 사먹었더랬다.
아마도 2학년때 부터는 별보러 다닌답시고 동호회에 가입해서 2년 정도는 산으로 들로 쏘다니면서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극복하게 되기도 했고, 기분 꿀꿀하답시고 오후 수업을 째고 바다보러 가는 길에 후문에서 만난 ㅎ양이 동행하여 부산역에 도착했더니 돈이 없어졌네?; 친구 여윳돈으로 그래도 왔는데 바다는 보고 가자 하여 나의 보금자리 송정으로 고고싱~ 돌아가는 기차비와 버스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 구멍가게에서 500원짜리 빵과 300원짜리 음료를 사서 나눠먹으며 모래 사장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우리를 가엾게 여긴 커피가게 아저씨가 들어오라더니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주셨다 ㅠ_ㅠ 송정에는 밤이면 커피트럭이 드문드문 생기는데 아저씨는 올해 처음으로 임시건물을 세워서 겨울 동안만 영업을 하는 것이라 했지.
편입한 첫 해 첫 학기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벽 2시 3시 귀가하며 술독에 빠져 살았고 반 년 쉬고 연수를 간 캠브리지에서는 심한 낯가림을 드디어 극복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혼자 골목골목 길을 누비고 다니거나 기차를 타고 근방 다른 마을 나들이도 다니는 등 소중한 추억 만들기에 올인. 귀국 후에는 인디밴드 공연 보러 다닌다고 그 멀리서 홍대를 일주일에 서너번은 출근도장을 찍었던 것 같다 ㅎ
5. 졸업 후
늦깍이 대학생 딱지를 겨우 뗀 후 뭘 했더라... 아, 연구원에서 국제포럼 인턴을 몇 개월간 하면서 그룹과외도 두 건이나 뛰어서 내 인생 가장 풍족한 시절을 보냈었구나 ㅋㅋ. 시간 여유도 많아서 저녁에는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진도 찍고 영화도 종종 보러다녔더랬다. 여름에는 ㅈ군과 ㅇ군과 ㅇ양과 제천에 영화제 보러 가서 헌팅을 당하는 등 즐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와서 고속터미널에서의 논쟁과 설득의 과정을 거쳐 우리집에서 또 하룻밤 놀기. 한마당축제 인턴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고 축제컨설팅하는데 계약직으로 들어가서 또 약 2개월 재미난 사회 경험을 했구나. 그 사이 ㄱ양이랑 주말마다 토플 스터디도 잠시 했었군 그래. 그리고 지금 있는 자리. 지나고 나면 이 곳도 힘들었던 일들은 모두 지워진 채 즐거웠던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 될까???
그러고 보니 나 정말 공부한 기억이 없구나 =_= 완전 놀고 먹고 즐기는 다이나믹한 삶 그 자체네!!!;;;
어떻게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졸업 직전까지 책을 본 기억이 없을까... (세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만화책은 일단 제외;)
그나마 마지막 학기 때는 철이 좀 들어서 였는지 이런저런 책들도 가까이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말야.
졸업을 앞두고 그제서야 공부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던것 같아- 늘 뭐든지 늦게 깨닫는 바보.
그래도 뭐.. 지금이라도 책읽는 취미가 생긴게 어디야~
옛 추억을 더듬고 있으려니 웃을 일이 많아져서 기분이 한층 발랄해졌어.
다행이다- 이제 다시 업무로 돌아가도 밝은 마음으로 브로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씨-익 한 번 웃고 다시 시작하자!
+ 쓸 때는 몰랐는데 다 쓰고 보니 무진장 길고 빡빡하구나 =_= 설마 다 읽는 사람은 없을테고 나는 기분이 좋아진 걸로 대만족!
잠시 한국 갔을 때 꼭 바다를 보고 오고 싶었는데 결국 못 갔더랬다. 깜깜밤 '송정' 모래사장에서 맨발로 뛰놀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이 그냥 와버렸네-. 1년 후에는 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