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life

담장 위의 고양이

nobadinosemi. 2009. 2. 12. 06:02

가보고 싶던 왕립건축학회 카페에서 인터뷰가 있던 날
늘 그렇듯 영국 기차는 말썽이었고 기자는 1시간쯤 지각을 했다
전시회 구경을 하다가 자리를 잡고 앉아 따뜻한 홍차 한 잔과 함께 책 읽기
별로 멀찍이 떨어지지 않은 옆테이블에서 러블리 영국 액센트의 신사분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엠피삼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보다 더 감미로운 음악이더라는. 

짙은 안개가 내린 새벽 창 밖을 바라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옷을 꽁꽁 여미고 문 밖으로 한 발짝
비가오나 눈이오나 뿌연 안개가 가득하나 그저 그림같은 풍경
잔뜩 움추린 어깨를 감싸 안은 버버리코트 입은 신사가 겅중겅중 스쳐 지나가면 사진이 더 쓸쓸해질까?

별나라
간판없는 집
자물쇠가 꼭꼭 채워진 하얀 문짝 속에는 누가누가 살고 있을까?
또박또박 걸어가다 갑자기 멈춰 서서 사진기를 꺼내드니 볼모가 '뭐 저런걸 찍냐?' 한다

이천구년 일월 일일
런던 시내를 가로지르는 3시간여 동안의 퍼레이드
유명하다 멋지다하여 비싼 차비 들여 나갔더니 나는 사람 구경 외에는 여-엉 별로다

파아란 하늘이 반짝반짝 하던 날
찌뿌둥한 몸도 풀겸 걸어서 킹스톤 나들이

엑스이십육을 타고 공항을 오가면 늘 마주치는 풍경 하나
이 모습이 너무 담고 싶어서 매번 버스에서 내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물론 단 한 번도 내린 적은 없다
왜냐? 그러기엔 차비가 너무 비싸기도 하고 한 시간에 한 대 밖에 없는 버스를 기다리는건 너무 힘들잖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간다
칙칙한 탬즈 강도 어둠에 물들면 오슬로의 맑은 바닷물과 다를바없이 보이지

외로운 도시 풍경 사이로 새 한마리 날아간다
녀석 때문에 사진이 조금 아늑해져서 좋다

강물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새들은 해가 저물어 가는데 둥지로 돌아갈 생각이 없나보다
근처에만 가도 혹시나 먹을 걸 주나 싶어 파드득거리며 몰려드는데 인천 앞 바다 갈매기가 생각나더라
우리나라만큼 새우깡이 싸다면 노래방용 커다란 봉지 하나 사다가 원없이 던져줄텐데 말야

킹스톤에 있는 영화관엘 갔다
가서 영화를 본 건 아니고 여기는 또 어떻게 생겼나 싶어서.
들어갈 일이 없으니 별로 볼 것도 없고 휘휘 돌아 나오는 길에 할머니 한 분을 발견했어
누군가를 기다리시는지 저 자리에서 꼼짝 않고 십여분을 계시더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찍고 싶었으나 별로 주목을 끌고 싶진 않아서 패스

인형 뽑기 상자 속 세상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는 타일랜드산 인도산 중국산 베트남산 인형들이 빼곡하게 모여 반상회 중
언제 올 지 모르는 기회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저 안에서도 치열한 탈출 작전이 벌어지고 있을까?

술집? 카페?
누군가는 영화를 보기 전 시간을 죽일 장소로 선택을 할 테고 누군가는 영화를 본 후 담소를 나눌 장소로 선택하겠지?
늘 가난함을 핑계로 영화관도 술집도 카페도 멀리멀리

남들 눈에는 특이할 거 하나 없는 이런 풍경이 내 눈엔 왜 특별하게 보여서 셔터를 누르게 될까?
하얀 봉투에 담겨진 과자 봉지를 보면서 꽃으로 장식된 현관을 보면서 혼자 상상해
무슨 상상인지는 비밀!

전화로 수다떠는 걸 좋아하는 탓인지 전화기만 보면 왠지 아련하고 그립고 애착이 가고 그런다
지나치면서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괜히 들어가서 수화기 한 번 들어보고 번호 꾹꾹 눌러보고
한국에는 공중전화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라지?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얼어 죽을것 같던 저녁 야외 공연을 기다리면서 식사 대신 핫도그로 끼니를 떼웠다
초록빛 잔디 위에 눈이 소복히 쌓인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음식 트럭 두 대
따뜻해 보이지?

클릭해서 크게 보면 조금 더 뚜렷하게 보이는데 말야
정말 눈보라가 치던 저녁이었거든
공연장 옆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짐을 다 챙겨 떠날 준비를 마치고 눈을 헤치고 나아가기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거야

밀튼 킨스에 위치한 스테이블스 극장은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참 의아했어
보통 극장이라고 하면 마을 중앙에 위치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여긴 버스도 없어 보이고 말이지
알고 보니 다들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차를 몰고 오더라고

뉴버리에 있는 콘 익스체인지 극장
건물이 참 그럴듯하지? 시설이 참 좋아-
주룩주룩 비가 내리더니 금새 하늘이 마알갛게 개여서 더 기분이 좋았더랬지

셋팅하는데 시간이 무지 오래 걸려서 나는 살짝쿵 빠져 나와 동네 구경하기
수제 소시지를 파는 곳인데 뭐랄까... 정말 작은 동네의 푸줏간 같은 느낌?

강변에 위치한 코스타에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나도 한 몫 거들고 싶었지만 수중엔 단돈 일파운드 하고 이십센트뿐

강 위로 놓인 짧고 나즈막한 다리위에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더라
그 옛날 옛적엔 마차를 탄 귀부인들이 망사 달린 모자를 쓰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풍경을 감상했으려나?

여기는 브랙넬 사우스 힐 파크 아츠 센터
무대 위에 놓여진 장비 상자가 마치 보물상자처럼 보여서 리허설 도중 찰칵

캄캄한 어둠 속에 놓인 구내 연락용 전화기와 낡은 의자
조금 더 각도를 달리 해서 담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급하게 셔터를 누르느라 그만...
그래도 보정은 싫으니까 있는 그대로 그렇게.

크리스마스도 연말도 지난 지 오래지만 나무에는 조그마한 조명용 전구들이 여전히 반짝반짝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어찌나 바쁜지 몇 초 안 되는 순간에도 제대로 윤곽이 잡힌 이가 없네

워털루 브릿지에서 런던 브리지 역을 찾아가다가 방향 잃고 헤매기

파아랗고 노랗고 하얗고 칙칙하고 맑고 밝고
온갖 복잡 미묘한 상념이 다 담겨 있는 풍경

철봉들로 엮어 낸 건물 속에는 따뜻한 조명이 있고 책상이 있고 음악이 있고 사람이 있어
그 속의 하나가 되어 여유를 느끼고 싶지만 마치 성냥팔이 소녀처럼 그냥 그렇게

내셔널 씨어터 기둥이 파랗게 빛나고 주차장에 정차한 차들은 하얗게 하얗게
별빛 하나 없는 하늘이 그래도 붉게 빛나지 않아 좋다

사진에 담을까 말까 담을까 말까 망설이고 망설이고 망설이다 그래 담자! 그러고 한 발 두 발 가까이 가까이
구도가 묘해서 자리에 멈춰서서 한참을 고민했는데 색감은 마음에 드는데 역시 구도는 그다지...

트라이포드없이 야경을 담는 건 역시나 어려워
숨을 잔뜩 들이마시고 꾹 참은 채로 셔터를 눌렀는데도 이렇게 속절없이 흔들리네
꼭 누구 마음 같구나

이 사진은 잘 모르겠다
정말로

자물쇠로 꼭꼭 닫힌 실내에 놓인 가로 책꽂이에는 브로셔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어
마치 눈이 잔뜩 쌓인 산장 속 같은 따뜻함

아줌마가 앉아 있었는데 셔터를 누르니까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우려는 듯 숙여 버렸다
으으- 이게 모야

하늘빛이 묘하다
회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니고 초록색도 아니고
묘하게 어울리는 색들의 잔상이 필름 속에 담겨 내 눈을 즐겁게 한다

Every Good Boy Deserves Favour

닭장 속에는 암탉이 꼬꼬댁 꼬꼬꼬

누군가 바퀴를 훔쳐갔는지 자물쇠가 걸린 채 강가에 버려져 있는 자전거 하나
의자에 앉아서 저 놈을 어케 담아볼까 오래오래 고민했는데 별로 답이 없더라
그래도 그냥 가려니 왠지 허전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늘 생각해
어떻게 말을 건넬까?
어리석다는 걸 알면서도 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