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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는 비둘기 한 마리를 훔쳐 왔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파서 허락된다면 서로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먹을 판이었다. 우리는 손가락 다섯개 중에서 어느 손가락이 가장 필요없는 손가락인가를 의논하였다.

"엄지 손가락."
내가 손가락 중의 하나를 펼쳐 들자 그 애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건 안 돼."
"왜 안 돼."
"엄지 손가락은 으뜸의 표시야. 그것이 없다면 첫째를 나타낼 수 없어."
"그럼 두번째 손가락."
"안 돼."
그 애가 소리질렀다.
"왜 안 돼."
"둘째와 셋째는 공부를 해야 된다. 글을 써야 돼."
그래. 그것은 맞는 이야기다. 우리는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은 다 팔아먹었다. 옷과 외투, 시계와 라디오, 담요와 만년필, 그리고 어머니 손가락에서 훔쳐 온 반지, 그 모든 것을 팔았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책은 팔지 않았다. 우리는 굶을지언정 책은 팔 수가 없었다.
"그럼 넷째 손가락."
나는 네번째 손가락을 펼쳐 들었다.
"안 돼."
그 애가 대답했다.
"왜 안 돼."
"반지를 껴야돼. 약혼 반지를."
"그렇다면 새끼 손가락 하나로군."
나는 새끼 손가락을 까닥까닥해 보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쓸모가 있어."
"어디에."
"콧구멍 후비는 데."
우리는 웃었다. 그러니까 배고프다는 것은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아직 웃을 힘이 남아 있으니까. 물론 콧구멍 후비지 못한다고 죽는 법은 없으니까. 손가락 중에서 새끼 손가락이 가장 쓸모없다는 얘기가 되겠지. 먹으려 든다면 우리는 새끼 손가락을 떼어 먹어야 한다. 그럼 우리는 영원히 콧구멍을 후빌 수 없을 것이다.
"또 있어."
그 애가 대답했다.
"콧구멍 쑤실 때보다 더 긴요한 게 있다."
"그게 뭔데."
"손가락을 걸어 맹세할 수 없잖아."
그러고 보면 다섯 손가락 모두가 다 자기 나름대로의 쓸모가 있는 것이다. 그것 참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다섯개 중에서 한개쯤은 없어도 무방할텐데. 사람은 왜 손가락 다섯개에다 그 본기능 이외에 상징적인 의미마저를 부여해야 하는 것인가.


Posted by nobadinos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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