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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과학기술, 형이상학



- 베르그송과 바슐라르를 중심으로 이정우





대중의 일상성을 형성하는 인식 체계를 상식이라 한다. 여기에서 대중이란 인간들 중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떤 측면을 말한다. 그것은 곧 일상성을 살아가는 한에서의 인간이다. 비(非)대중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도 삶의 일정한 부분에서는 대중이며, 많은 사람들은 삶의 대부분에서 대중이다. 대중적 일상성은 세계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일정한 평균적인 인식 체계에 의해 밑받침된다. 즉 일상성은 상식에 의해 밑받침된다. 상식이라는 개념은 일정 측면에서 허구이다. 상식의 아래에는 무수한 불연속과 갈등, 집단 표상, 시대적 편견 등등이 요동치고 있다. 상식은 그런 차이들을 '상식'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신체 구조에 따른 지각 체계와 그 지각 체계에서 유래하는 일상언어로 구성된 흐릿한, 평균적인 무엇으로서 상식은 존재한다. 기술 문명에서 기인하는 지각 체계의 변화와 역사의 급변에 따른 일상 언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줄기차게 흘러가는 것은 상식이 내포하는 관성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상식의 대척점에서 형성되었다. 상식이 신체의 지각 구조와 일상 언어로 형성된다면, 형이상학은 비가시적 차원에 대한 사변과 비일상적 언어들의 구사를 통해 형성된다. 17세기 이래 발달한 과학기술은 상식의 세계(중간 차원)를 넘어 미시적-거시적 세계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상식과 다르며, 사물들의 내재적 법칙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과도 다르다.







이로부터 형이상학의 위기가 도래했으며, 그 위기는 동시에 새로운 형이상학의 계기가 되었다. 베르그송은 19세기를 거치면서 본격화된 과학기술 문명의 본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형이상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냈다. 이 글은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이 상식 및 과학기술과 맺는 관계 및 그의 사유에 대한 바슐라르의 비판을 다룬다. 그러한 비교 검토를 통해 형이상학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할 것이다.








지능의 한계와 형이상학






베르그송에게서 상식은 과학과 연속성을 형성하며, 과학은 기술과 연속성을 형성한다. 과학은 세련된 상식이며 기술은 과학의 현실화이다. 때문에 베르그송에게서 상식, 과학, 기술에 대한 분석은 이들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구도 아래에서 다루어진다. 이것들 모두는 인간 지능의 산물인 것이다. 베르그송에게 지능이란 분석적 이성, 합리적 이성이다. 그렇다면 지능의 활동 양태는 어떤 것인가?






분석적 사고가 복합적 사물들을 분할한다는 것,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가장 단순한 것에까지 분할하며 그 분할된 것들을 다시 조합해 전체를 재구성한다는 것, 분할의 조건으로서 하나의 시작이 다른 하나의 끝과 겹치지 않는 'partes extra partes'의 성격을 띤 매거(枚擧)를 추구한다는 것 등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복합적이란 타자들이 섞여 있음을 뜻하며 분석이란 어떤 타자도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섞여 있던 것이 분할된다는 것은 그 섞임이 외적 섞임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완전히 섞여 있는 것들은 분할될 수 없기 때문이다(이 경우 엄밀히 말해 '들'을 쓸 수 없다). 분석을 허용하는 복합체는 곧 그 구성 성분들이 외적으로 섞여 있을 뿐인 복합체이다. 조합도 마찬가지이다. 부분들이 겹치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게 조합됨으로써 전체가 성립할 때, 분석과 조합이 가능하다. 조각 그림 오려-맞추기를 가능하게 하는 이런 성격은 정확히 공간에서 가장 선명하게 성립한다. 베르그송이 과학의 본성을 공간화에서 찾고, 특히 시간·운동의 공간화에 대한 비판을 형이상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능에 대한 베르그송의 포괄적인 분석을 상식, 과학, 기술의 경우로 분화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베르그송은 과학의 논리를 '고체의 논리'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상식의 논리일 것이다. 상식의 논리는 고체를 모델로 한다. 왜인가? 인간에게 가장 명료하게 다가오는 분석은 공간적 분석이며(그래서 사람들은 지도를 그리고, 증권 시세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그리고, 건축물의 도안을 그린다), 명료한 공간적 분석을 허용하는 것은 고체이기 때문이다. 반면 유체(액체, 기체)는 일정한 공간에 고정되지 않으며 때문에 공간적 분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액체와 기체를 다루는 것은 늘 고체의 도움을 받아서이다(그릇에 담긴 물). 상식은 사물들을 다루기를 원하며 그것들이 인간에게 유용한 존재들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문화 세계 속의 인간들을 둘러싼 사물들은 일차적으로 도구들이며, 이것들이 도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물들의 사물-임을 생각하게 된다. 상식의 세계에서 사물들은 곧 '물건들'이다.






베르그송은 과학과 상식의 차이는 크기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미시 세계에 대한 과학의 분석은 사실상 거시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미시 세계에 투영한 것이다. 천문학적 크기에서의 분석도 마찬가지이다. 근대 과학자들이 말하는 '입자'는 중간 차원(상식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사물들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물리학적 편의를 위해 일정한 가공을 가하긴 하지만(분할 불가능성, 탄성 등등) 원자는 필경 일상 세계에서의 공[球]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베르그송 이후의 과학을 생각할 경우 문제는 다르다. 수학이 가능한 공간을 사유하는 담론이라면, 현대 수학이 창출해내는 공간은 고대적인 공간(유클레이데스 공간)은 물론이고 근대적인 공간(사영 기하학, 리만 기하학 등의 공간)까지도 매우 단순한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수학적 공간의 소수만이 사물들의 공간에 적용된다 해도, 오늘날의 과학적 공간은 상식 세계에서의 경험을 투영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적합할 정도로 복잡하다. 과학과 상식의 연속성이라는 베르그송의 테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베르그송의 테제가 유효하다면, 그것은 과학기술 -- 과학과 기술이 하나를 이루는 한에서 이렇게 쓸 수 있다(밀접하게 연계되지만 하나는 아님을 뜻할 경우 '과학-기술'로 또 서로 구분됨을 뜻할 경우에는 '과학/기술'로 쓸 수 있다) -- 이 본질적으로 사물의 조작을 지향한다는 점에 있다. 조작이 용이한 것은 고체이다. 달리 말해 무기물이다. 지능이 고체의 논리를 구사한다는 것은 곧 고체가 인간의 실용성 관심사에 부응함을 뜻한다. 따라서 지능 즉 분석적 이성은 '순수 이성'이 아니다. 지능은 진화의 산물이며 '호모 파베르'의 생존 무기이다. 분석적 이성이 순수 이성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대신 그것을 진화의 연장선상에 위치시킨 것은 베르그송 사유가 서구 철학사 전체에 맞세운 강력한 도전장이다. 그것은 탈근대 철학은 물론 탈서구 철학의 문턱을 형성하고 있다. 분석적 이성의 눈길은 순수한 눈길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사물에 대한 실용적 관심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 이 선언이야말로 베르그송 사유의 혁명적인 선언이다.






이 때문에 합리주의자들이 순수 이성의 화신으로, 진리의 안내자로 생각했던 수학의 위상도 달리 생각된다. 수학, 특히 기하학은 칸트가 생각했던 '아프리오리한 종합 판단'이기 이전에 사물들의 조작을 위한 공간 조작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생존 무기이며, 땅을 측정하는 담론이기 이전에 인류의 긴 진화 과정을 통해 고체를 다루는 과정에서 형성된 담론이다. 지능은 무엇보다 '형식'에 밝은 인식 능력이다. 고체를 다루는 과정을 사유 공간에 옮겨놓고서 자유롭게 조작해 보는 능력, 이 능력이 문명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의 세계는 처음부터 순수 지성의 세계였던 것이 아니라 긴 진화 과정을 거쳐 인류가 도달한 독특한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분석적 이성은 이 독특한 인간의 문법을 가지고서 세계를 재단하는데 익숙해 있다. 베르그송은 그 전형적인 경우로서 제논의 역설에 주목한 것이며, 이 역설에 나타나는 분석적 이성의 논리(연속성을 마름질하는 분석, 부동의 조각들을 맞추어서 운동 전체를 재현하려는 시도 등)를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이런 생각이 결정적으로 대면해야 할 하나의 담론은 무한소 미분이다. 무한소 미분은 고대의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을 넘어 사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베르그송은 무한소 미분을 적극적으로 분석한다. 무한소 미분은 수학에 시간과 운동의 개념을 도입했다. 'dx'는 수가 아니라 개념이며, 이것은 곧 '극한으로의 이행'이라는 과정을 함축한다. 무한소 미분은 분석적 이성의 특징인, 사물의 불연속적 파악을 넘어 '어느 순간에나' 연속적 운동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런 상황은 베르그송에게 있어 과학과 형이상학의 관계를 다시 한번 음미해야 할 필요성을 던져준다. 베르그송이 상식-과학-기술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이 담론들에 형이상학을 맞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의 역사 자체가 이런 관계에 끊임없이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학과 형이상학의 관계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방식으로 수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담론들의 변화 과정을 따라가면서 계속 수정해야 할 내용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베르그송에서 과학과 형이상학은 이중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듯이 보인다. 한편으로 과학과 형이상학의 경계선은 명확하다. 베르그송의 사유 전체가 이 이분법에 기반해 있다. 공간과 시간, 정지와 운동, 등질성과 다질성, 지능과 직관, ... 등등. 과학과 형이상학은 실재의 '반쪽'을 인식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과학은 발전하며 따라서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에 점차 가까이 간다. 즉 과학과 형이상학의 경계선은 계속 바뀌어간다. 이 때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은 과학의 극한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형상철학에서 무한소 미분으로, 그리고 양자역학 등으로 발전해 간 과학의 역사는 지속에 점차 가까워지는 흐름을 나타낸다. 때문에 형이상학은 과학의 극한적 외삽으로서, 과학의 극한으로서 존재한다. 과학과 형이상학의 거리는 점차 좁아진다(물론 과학이 법칙성을 추구하고, 기호를 사용하고, 공간화를 추구하는 한 그 거리가 소멸되지는 않는다) 과학과 형이상학 사이의 경계선은 과학'사(史)'를 통해서 바뀌어간다. 베르그송은 첫 번째 관계를 주로 논했지만 이 두 번째 관계 역시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실증 과학은 형이상학의 직관에 점차 가까지 가지만 결코 만나지는 않는다고 결론내려야 할 것이다.






기술의 경우, 베르그송은 과학과 기술을 전적으로 연속적으로 파악한다. 상식, 기술, 과학이 모두 지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과학의 목적은 '예측하고 측정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곧 과학을 기술과 거의 동일시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사유하는 것보다 사는 것이 먼저이다. 산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을 뜻하며, 행동한다는 것은 사물들을 조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신체적으로 열등한 인간은 도구 조작을 통해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모 파베르'는 흐르는 세계에서 잡아낼 수 있는 일정한 측면들에 주목하고 그 고체적 측면들을 조작한다. 생존한다는 것은 '대상들로부터 유용한 측면들만을 뽑아내는' 행동에 기반하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인간의 상식은 이렇게 형성되며, 기술은 그 세련된 형태이다. 과학은 기술의 연장선상에서 성립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물질에 관련해서 두드러진 성과를 낸다. 물질성이야말로 바로 그것이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이다. 설사 과학이 기술과는 별도의 목적으로 형성된 경우라 해도(17세기의 과학처럼), 결국 그것은 잠재적으로 기술을 전제하며 언젠가는 기술로 응용된다. 결국 상식, 기술, 과학은 모두 자연을 순수한 눈으로 보기보다 실용적 눈으로 본다. 베르그송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과학이 매우 '주관적인'('자의적인'은 아니다)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베르그송이 상식, 과학, 기술을 모두 묶어 지능의 이름 아래에서 비판하는 것은 이런 시각에 입각해 있다. 이 담론들은 모두 고체의 논리, 분석적 사유, 실용적 목적 등을 공통의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베르그송은 이런 사유 양식에 형이상학의 사유 양식을 대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미묘한 문제가 발생한다. 형이상학이 상식과 대립한다면 당연히 현실과도 대립하는가? 베르그송의 지속이 상식을 넘어 '실재'를 찾는 전형적인 '형이상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사유가 상식과 대립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r alit ' 개념에는 미묘한 이중성이 있다. 때로 그것은 상식의 세계를 뛰어넘은 실재를 가리킨다. 그러나 어떤 경우 그것은 오히려 과학의 추상적인 법칙성에 포획되기 이전의 생생한 현실을 가리킨다. 베르그송이 어떨 때는 현상학과 대립하는 인물로 보이지만, 어떨 때는 매우 상통하는 인물로 보이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베르그송의 지속은 과학 이후의 실재인가, 과학 이전의 현실인가?






지속이란 분할될 수 없는, 고착화될 수 없는 흐름, 즉 연속적 운동 또는 운동하는 연속성이다. 베르그송의 'r alit '를 규정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속성이며, 이 속성이 감각적인가 초감각적인가는 이차적인 문제이다. 즉 우리가 베르그송의 지속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감각적인 것과 가지적인 것에 따라 현실과 실재를 나누는 기존의 사유 구도 그 자체를 버려야 한다. 지속은 감각 저편에 있을 수도 있고(예컨대 물 내부의 운동) 이편에 있을 수도 있다(표면에 나타나는 물의 흐름). 그러나 나타나 있는 지속이라 해서 그것이 상식과 합치하지는 않는다. 왜인가? 우리의 상식이 생각하는 '현실'은 이미 평균화된 세계이고(우리는 세밀하게는 모두 다른 사과를 그냥 '사과'라고 생각한다), 둔한 감각과 의식에 의해 고착화된 세계이며(우리의 둔한 감각과 의식은 매일 달라지는 강물의 모습을 포착하지 못한다), 일상언어를 통해서 이미 정돈된 세계이며(언어는 지속을 분할하고 고착화한다), 무엇보다도 특히 우리의 실용적인 관심사에 의해 채색된 세계이다(우리는 우리의 利害에 맞추어 사물을 재단한다). 그러나 현실을 섬세하게 보라. 그 때 상식과 현실은 같지 않음을 알게 되리라. 베르그송은 사물을 지속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볼 때 우리 모두는 예술가가 된다고 말한다.






베르그송이 과학, 기술, 상식을 묶어서 '지능'의 작업으로 파악하는 것은 앞에서 검토했듯이 일정한 무리함을 내포한다. 이런 점을 비판함으로써 과학을 옹호하고 형이상학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인물은 바슐라르이다.








형이상학 비판과 새로운 과학정신






베르그송과 바슐라르가 부딪치는 첨예한 지점들 중 하나는 상식과 과학의 관계라는 문제이다. 과학적 인식이 상식이 세련화된 것, 중간 차원에서의 경험을 극대, 극미 차원에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베르그송의 생각과 달리, 바슐라르는 과학이 상식과 단절됨으로써만 과학으로서 성립한다고 본다('인식론적 단절'). 이런 생각은 이미지와 개념의 대립을 통해서 뒷받침된다.






바슐라르에게 인식이란 개념의 소관이지 이미지의 소관이 아니다. 이미지는 현상학과 시학의 대상이지 인식론의 대상이 아니다.(따라서 그의 시학에서는 역으로 이미지, 이미지작용=상상작용이 핵심에 놓인다) 이미지는 인간이 세계와 만나는 원초적인 장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그것은 아직 '합리화'되지 않은, 흐릿하고 불분명한 차원이다. 그러나 개념은 다르다. 개념은 지각의 언어가 아니라 사유의 언어인 것이다. 물론 상식도 개념을 사용한다. 그러나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은 다르다. 일상 언어에 대한 바슐라르의 생각은 베르그송과 일치한다. 일상 언어는 지각을 통해서 성립하며,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위와 관련된다. 그것은 실용적 목적을 띤다. 바슐라르는 일상 언어가 기본적으로 분류하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으며, 지각을 통해서 얻은 성질들을 분류하는 자연발생적 계통학이라 보았다(漢字는 이런 사실을 특히 잘 보여준다). 반면 개념은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서 형성된다. 그가 캘빈의 이미지들과 보어의 이미지들을 구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미지들은 '인식론적 장애물들'에 속한다.






바슐라르에 입각할 경우, 베르그송은 상식과 과학 사이의 간극을 보지 못했다. 과학은 상식을 미시/거시 세계로 투영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일상 세계에서처럼 한 고체의 공간적 동일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는 미묘하다. 베르그송이 과학을 비판한 것은 그것이 상식의 이미지들을 아직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이 상식으로부터 벗어나 인식론적 단절을 이룬 것은 베르그송의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예컨대 드 브로이는 '측정에 의해서건 관찰에 의해서건 만일 우리가 운동하는 대상을 위치짓고자 한다면, 우리는 단지 위치만을 얻을 뿐이며 운동 상태는 달아나버리게 된다'는 양자역학의 언어는 '공간에서는 오직 공간의 부분들만이 존재하며, 나아가 운동하는 대상을 생각하는 모든 지점에서 우리는 단지 위치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라는 베르그송의 언어로 번역된다. 즉 베르그송이 '과학은 ...하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근대 물리학을 말할 뿐이며, 그런 판단은 오히려 근대 과학으로부터 현대 과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긍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만년의 베르그송이 (상대성 이론에 대한 태도와는 정반대로) 양자역학과 (양자역학의 철학자인) 바슐라르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베르그송이 건강 때문에 양자역학을 적극 검토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드 브로이가 아쉬움을 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매우 미묘한 것이다. 베르그송은 양자역학 이전의 과학에 비판을 가했고 그 비판이 양자역학 형성에(특히 그의 강의를 들었고 또 그를 흠모했던 드 브로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바슐라르는 양자역학 이후에 활동했으며, 양자역학이 고전 과학과 어떻게 다른지를 역설했다. 그렇다면 바슐라르의 베르그송 비판이 정말 뼈있는 비판인 것일까? 바슐라르가 그토록 강조하는 만큼 과연 두 사람이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도 우리는 논의의 축을 추상적인 논리 공간이 아니라 실제 역사 공간으로 돌려야 할 필요를 느낀다. 문제는 과학'사'이다.






베르그송이 과학사를 일관된 시각에서 읽는 것은 분명하다. 베르그송은 서구 학문 전체를 하나의 확고한 존재론적 시각을 가지고서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었던 몇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존재론적 시각이란 바로 시간이다. 때문에 베르그송은 서구의 과학과 철학의 역사를 시간 개념에 비추어 독해하며, 앞에서 말했듯이 과학과 형이상학을 뚜렷이 대비시키는 맥락과 과학이 지속형이상학에 계속 가까이 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맥락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리고 메이에르송은 베르그송의 시각에 입각해 서구 과학사를 좀더 실증적으로 파헤쳤다.






바슐라르가 베르그송을 겨냥해 던지는 비판의 한 맥락은 과학사에 대한 이런 등질적인 독해이다. 바슐라르는 일정한 형이상학의 입장을 과학사에 투영할 것이 아니라 과학사의 실제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학사에 관한 한 바슐라르의 작업이 더 구체적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만일 과학사 연구를 (예컨대 미국의 대학들에서 활발하게 실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철학과 거의 관계없는 개별 과학으로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철학적 관심사에서 추구한다면, 과학사의 '실제'에 충실한 것은 성실한 철학을 수행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철학의 핵심은 아니다.(물론 철학이 개별 과학들의 성과를 광범위하게 수렴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핵심은 그 과학사적 사실들의 철학적 의미인 것이다.






여기에서 메이에르송에 의해 제기된 '역사적 아프리오리' 개념을 상기해 보자. 메이에르송은 꽁트 이래의 전통에 따라 합리적 이성의 의미와 한계에 대한 인식론적 사유는 과학사에 뿌리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그는 칸트 식의 인식론, 즉 인간 이성의 구조를 고정시켜버리는 인식론을 비판하며, 과학사에 기반한 역사적 인식론을 강조했다. 그러나 만일 과학사에서 어떤 아프리오리한 측면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산더미 같은 과학사적 사실들만을 쌓아놓는다면, 그것은 적어도 철학적으로는 무의미하다. 우리는 과학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아프리오리한 측면들, 즉 과학적 탐구들에 앞서 미리 존재하며 그 탐구들을 이끌었던 인식의 가능 조건들, 공통항들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메이에르송 자신이 강조했던 '시간의 제거'가 그 예일 것이다.






그런데 '시간의 제거'는 단순히 하나의 '예'가 아니다. 하나의 예는 그것을 예로 하는 일반성의 한 경우이다. 그러나 그 일반성이 등질적이지 않고 다질적일 때, 예들은 대등한 경우들을 형성하지 않는다. 예들의 인식론적 지위는 같지 않다. 어떤 예는 핵심적이다. 우리는 '핵심적 예'라는 개념을 '그것을 논박할 경우 그것을 포함하는 일반성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그런 예'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메이에르송의 '시간의 제거'는 핵심적 예이다. 왜냐하면 이 예는 과학의 '본질'에 관한 예이고, (메이에르송의 인식론이 기대고 있는) 베르그송 형이상학의 핵심 테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전 역학 체계에서의 가역성과 시간의 제거, 화학식에서의 동일성의 논리(예컨대 'NaOH + HCl = NaCl + H2O'의 경우)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제거'가 역사적 아프리오리로 간주될 수 있으려면, 그것이 현대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사실 우리는 상대성 이론이나 구조주의 등에서 역시 이 요소가 등장함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모든 과학 이론이 시간의 제거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시간을 제거하는 과학이 나온 후에는 대개 시간을 중시하는 과학이 나오곤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 역학은 엔트로피 이론에 의해 논박 당하고, 상대성 이론은 양자역학, 카오스 이론 등에 의해 논박 당하고, 구조주의는 후기 구조주의에 의해 논박 당했다.






그럼에도 이 원리가 중요하다면, 그것은 모든(아니면 대부분의) 과학은 운동(더 정확히는 변화하는 양들 사이의 함수 관계)을 파악하고자 하며 그 점에서 과학이란 곧 시간의 과학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분방정식의 독립변수가 늘 'dt'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볼 경우, 베르그송-메이에르송의 입장은 양면적이다. 과학이 곧 시간의 과학이며 따라서 과학사를 시간의 역사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분명 시간은 역사적 아프리오리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과학이 늘 '시간의 제거'를 실행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시간의 제거가 역사적 아프리오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 역사적 아프리오리는 시간의 제거와 복권이라는 이중 구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과학과 형이상학에 대한 베르그송의 양의적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보자. 과학이 공간을, 형이상학이 시간을 탐구한다고 생각할 경우, 이 명제는 부분 진리로 머문다. 분명 과학에 있어 공간에 무게중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중요한 국면들에서 시간 또한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바슐라르의 비판은 설득력을 가진다. 시간의 제거라는 역사적 아프리오리는 과학사에서 도래한 전혀 새로운 시대, 즉 양자역학의 시대를 해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방정식들이 '시간방정식'이라는 이름을 얻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양자역학에서 시간의 역할은 중시되며, 그 후의 카오스 이론에서는 결정적 의미를 되찾는다. 이 경우 베르그송의 과학관과 메이에르송의 역사적 아프리오리는 과학사를 통해서 논박된다.






그러나 과학사를 과학이 지속에 다가가는 과정으로 보는 측면을 취할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과학은 제논의 역리 이래 시간을 제거하는 것을 그 특성으로 했으나, 운동의 연속성을 포착한 무한소 미분, '모든 물리학 법칙들 중 가장 형이상학적인' 엔트로피 법칙, 그리고 시간을 우주의 근본 원리로서 인정한 양자역학, 카오스 이론을 거치면서 점차 베르그송적인 의미의 지속에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과학과 형이상학은 연속선상에 놓이게 되며, 형이상학은 과학의 반대급부로서가 아니라 과학의 외삽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럴 경우 우리는 지속의 형이상학이 과학사를 일관된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는(유일한 것은 아닐지라도) 빼어난 하나의 역사적 아프리오리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베르그송-메이에르송의 이런 공헌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바슐라르적인 비판을 뚫고 나갈 수 있으려면 두 가지 사항을 극복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바슐라르는 과학사에서의 다(多)와 불연속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제시한 인물이다. 바슐라르 이래 'la Science'를 논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되었다. 과학의 각 '구역들'은 자율성을 띨 뿐만 아니라 자체의 문제를 가진다. 공간적 복수성 못지 않게 시간적 복수성도 중요하다. 과학사의 불연속은 인식의 역사를 보는 눈에 있어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선구자의 신화'에 대한 비판은 과학사의 시간을 복수화시켰으며 또 이성의 일양적 전개라는 개념을 파기시켰다. 물론 바슐라르는 과학사의 불연속과 동시에 '포함' 개념에 의한 발전을 강조했다.(유클레이데에스 기하학은 곡률이 0일 때의 리만 기하학이고, 열역학은 입자들의 수가 무한히 많을 때의 통계역학이며, 뉴턴 역학은 운동체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릴 때의 상대성 이론이다) 바슐라르는 과학사에서의 개념적인 단절과 수학적인 포함을 동시에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정 급진적인 생각은 분명 원리들에 있어서의 단절 문제이다.






시간형이상학을 통해서 과학사를 보는 입장이 과학의 국지성 때문에 파기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모든 과학은 기본적으로 운동을 다룬다. 과학이란 결국 운동의 법칙성을 잡아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만이 과학의 근본 원리라고는 할 수 없다 해도(다른 존재론적 원리들을 생각할 수 있다), 시간이 (존재와 더불어) 가장 근원적인 원리들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따라서 과학의 국지성을 강조한다 해도 과학에서 시간이 근본적인 원리로 작동함은 분명하다. 시간을 중시하든 제거하든, 시간에 대한 기본 태도가 한 과학의 성격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는 한에서 시간형이상학은 분명 과학의 근저를 사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사이다.






형이상학을 과학의 외삽으로 보는 한에서, 베르그송은 서구 담론사를 시간 망각으로부터 서서히 깨어나는 과정으로서 해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보는 한에서 과학사는 일관된 해석을 얻게 된다. 과학사의 세부적인 에피소드들, 우회로들, 우연들 등을 접어놓고 그 핵심적인 과정을 볼 경우, 결국 합리적 이성의 역사란 세계 속에서 이전의 개념틀(형상, 법칙, 구조 등)을 벗어나는 운동/변화를 잡아내고 그것을 더 복잡하고 더 역동적인 개념틀 속에서 해소시켜 온 역사이다. 흑체(黑體)라는 낯선 존재가 세계에 출현하면, 과학자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틀을 창출해낸다. 과학이란 낯섬, 차이를 동일성으로 용해시키는 작업이며, 그러나 그 동일성은 계속 진화하는 동일성이지 고착된 동일성은 아니다. 그런데 낯선 존재의 출현은 결국 새로운 운동의 출현이며, 새로운 운동의 출현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보면 과학의 역사란 결국 과학의 바깥에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과학의 내부로 끌고 들어와 길들여온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과학에서의 다와 과학사에서의 불연속을 인정한다 해도, 시간형이상학에 의한 과학사 해석은 매우 매력적인 한 관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간형이상학의 이러한 공헌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기술-과학의 연속성이라는 테제는 검토를 요한다. 베르그송이 'homo faber' 개념에 입각해서 상식, 기술, 과학을 연속선상에서 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바슐라르는 베르그송의 테제를 근본적인 수준에서 논박한다. 푸앵카레도 강조했듯이,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다르다. 기술이 실용성을 본질로 한다면, 과학은 순수한 행위이며 실재의 발견을 그 본질로 한다. 베르그송은 현실적인 고체를 다루는 실용적 관심이 세계 인식에 투영된다고 했지만, 예컨대 현대 화학자들은 현실 세계와는 전혀 다른 조건들에 입각해 분자들에 적용되는 고체성 개념을 제시했다. 현실 세계에서의 기술 개념은 과학 수립에 있어 오히려 인식론적 장애물로 기능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상상적인 것과 관련해서도 제기된다.






그렇다고 바슐라르가 과학과 기술이 무관계하다고 보는 것은 전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은 당연히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러나 바슐라르가 관심을 가지는 기술은 실용적 기술이 아니라 과학 탐구에서 요청되는 기술이다. 즉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계들이기보다는 기구들인 것이다. 기구들은 곧 '물화된 이론들'이라는 뒤엠의 유명한 말처럼, 과학 탐구에서 기구들은 필수적이다. 합리주의는 '적용'되어야 하며 물질주의는 '합리화'되어야 한다는 바슐라르의 (과학적) 변증법의 입장에서 볼 때, 기구에는 이미 이론이 묻어 있고 이론은 이미 기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바슐라르에게 기구들은 곧 이론과 실재 사이의 접면(接面)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바슐라르는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기술과 이론적인 과학 사이에는 날카로운 선을 그으면서, 동시에 과학적인 작업 자체 내에서의 기술의 의미는 전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분석은 베르그송적 기술 개념의 한계를 넘어 중요한 성찰을 제공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베르그송이 상식, 기술, 과학을 한덩어리로 묶어 '지능'으로서 다루고 그에 형이상학을 대비시킨다면, 바슐라르는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그 자리에 과학을 놓는다. 그리고 과학과 대조적인 또 하나의 행위로서 시적 행위(사원소의 현상학)를 놓는다. 이렇게 보면 결국 바슐라르는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을 과학과 예술로 대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베르그송이 형이상학에 부여하는 역할을 과학과 예술이 상보적으로 떠맡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히 존재/무, 시간, 그리고 직관의 문제이다.






베르그송에게 시간이란 결코 분할될 수 없는 연속적 운동이자, 그것을 통해 세계의 다질성이 나아가 세계에서의 새로운 창조(인간에 의한 창조나 사물들의 전이가 아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전적으로 새로운 도래)가 가능한 궁극적 존재이다. 지능은 이런 시간의 본성을 거슬러 운동을 분할하고 시간을 공간화한다. 시간의 이런 본성을 깨닫게 해 주는 인식 능력이 직관이다. 직관은 우리가 세계를 지속의 견지에서 볼 때, 공간보다 시간의 견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때 성립한다. '고정된 것에서 운동하는 것으로 이행하는, 이미 존재하는 개념들에 의한 상징적 인식은 상대적이다. 그러나 운동하는 것 안에 자리잡는 그리고 사물들의 생명 자체를 받아들이는 직관적 인식은 그렇지 않다.' 즉 직관이란 시간-운동 바깥에 서서, 그것을 논리/사유 공간으로 환원시켜서, 공간화하고 양화해서, 분할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운동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시간-운동과 하나가 되어 인식하는 것이다. 그 때에만 언어는 초극될 수 있고, 인식 주체와 세계는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직관은 절대적 인식이다.






바슐라르 역시 직관에 높은 인식론적 위상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의 직관은 시간 속에 자리잡는 직관이 아니라 시간을 멈추는 직관이다. 그것은 수평적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그 흐름을 수직으로 끊으면서 솟아오르는 직관이다. 그것은 '순간의 직관'이다. 바슐라르와 베르그송의 직관은 전개념적 직관과 공히 대비된다. 즉 두 사람 모두에게서 직관은 개념적 이해의 수준으로 나아가기 전에 '직관적으로 이해해서 ... '라고 말할 때의 직관이 아니다. 바슐라르에게 그런 직관은 합리적 인식 이전의 직관이며, 상식의 수준에서 발생한다. 베르그송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직관은 동시에 개념적 인식 이상의 인식이다. 베르그송과 바슐라르에게 공히 직관은 일반적인 개념적 인식을 넘어서는 고차적 인식인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베르그송에게서와 바슐라르에게서 다르다.






베르그송에게 직관은 지속의 직관이고 따라서 사물의 흐름과 주체의 흐름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지이다. 바슐라르에게 직관은 순간의 직관이며 흐름을 멈추게 하는, 즉 흐름 속에서 어떤 본질을 직관하는 것이다. 그 본질은 곧 수학적 본질이다. 바슐라르는 역동적 직관이라는 말을 쓰거니와, 이 말은 흐름/역동성의 직관을 뜻하지 않는다. 그 반대이다. 바슐라르적 직관의 가장 좋은 예는 아마 슈뢰딩거 방정식일 것이다. 물질의 흐름, 구름과도 같은 흐름 속에서 아름답기까지 한 방정식을 포착한 파동방정식이야말로 '순간의 직관'을 잘 예시해 준다. 바슐라르의 이원론이 하나로 합쳐지는 부분은 아마도 이 부분일 것이다. 시가 '순간의 형이상학'이라면, 양자역학의 세계와 시의 세계는 적어도 그 점에서 상통한다. 그러나 합리주의적 직관이 기하학적 직관, 형상적(形相的) 직관이라면, 시적 직관은 물질적 직관이다. 여기에서 아니무스와 아니마는 갈라진다.






베르그송은 상식, 기술과 과학을 하나로 묶고 그에 형이상학을, 그리고 함축적으로는 예술을 대비시켰다. 바슐라르에게서는 과학과 예술이 형이상학을 대치한다. 두 사람 모두 상식과 기술을 넘어선 순수한 세계 인식을 추구했지만, 과학에 대한 이해에서 갈라진다. 베르그송이 과학과 형이상학-예술을 대비시킨 그곳에서, 바슐라르는 형이상학을 대체한 과학과 예술을 대비시킨다.








탈코드적 사유로서의 형이상학







베르그송과 바슐라르의 입장을 염두에 두면서 문제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자. 우선 상식과 과학의 문제가 있다. 과학사를 거꾸로 거슬러올라갈수록 상식과 과학의 거리는 당연히 작아진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 문제는 '과학'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명목상의 문제이다. 과학이라는 말의 외연 자체가 사람에 따라 달리 이해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상식과 과학의 문제는 처음부터 매우 유동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로 올수록 그 거리가 점점 커져 온 것은 분명하며, 오늘날 과학의 세계는 상식의 세계와 거의 단절되어 있다. 그것은 아예 다른 '세계'이다. 나아가 현대 과학의 성격은 과거에 '형이상학적'이라고 불렸던 측면들을 상당 부분 포함한다(한 때 힘 개념조차도 형이상학적 개념이었다). 현대 과학은 고도의 사유의 세계인 것이다. 상식과 과학은 서로 다른 '세계'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바슐라르의 비판이 어느 정도 함축하듯이) 베르그송이 형이상학에 부여했던 역할들은 이미 과학에게로 이전되었는가? (양의성을 내포하는) 베르그송 사유의 한 측면에 입각할 경우, 일정 부분은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무한소미분은 고대 과학에 결여되어 있었던 연속성을, 즉 연속적 운동을 파악함으로써 지속에 가까이 갔다. 물론 현대 과학에서는 다시 불연속이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맥락은 과학사의 어떤 측면에 국한될 뿐 전체 국면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맥락은 다질성의 맥락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세계는 계속 새로운 질들을 '무한한 오성'(스피노자)에 내보냈으며, 과학은 그런 질들을 포착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들과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들을 지치지 않고 개발해 왔다. 그럼에도 만일 세계가 '절대적인 질적 풍요로움'이라면 그 절대성은 직관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과학이 측정하고(측정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운동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기호화하는(마찬가지로 언어는 어떤 형태로든 실재를 고정시킨다) 작업인 한에서, 절대적인 질적 풍요로움은 영원히 과학의 저편에 남아 있는 잔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슐라르의 비판을 받아들이면서도 베르그송 형이상학의 의의를 저버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맥락은 바로 창조성의 맥락이다. (원칙적으로 그럴 수 없지만) 만일 과학이 궁극적으로 발전해 세계의 다질성을 완벽하게 기호화했다 해도,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세계에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질(質)이 도래하며 따라서 새로운 작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창조 개념과 전혀 다른 베르그송적 창조 개념은 '모든 것이 주어졌다'는 기존의 과학·철학의 대전제를 무너뜨리는 혁명적인 가설로서, 모든 형태의 결정론을 논박하는 베르그송 사유의 최후의 귀착점이다. 따라서 베르그송 형이상학은 과학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관점으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은 과학을 위한 형이상학은 아니다. 형이상학은 과학과 관련될 뿐 아니라 예술, 정치, 종교 등등과도 관련된다. 그럼에도 한 형이상학/존재론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것은 제반 과학을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베르그송의 사유가 그런 사유로서 한 손에 꼽히는 사유라는 것은 물론이다.(베르그송과 더불어 화이트헤드와 들뢰즈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베르그송 형이상학의 거시적인 의미를 인정한다 해도, 과학사에서의 세부적인 사항들은 바슐라르가 강조한 다와 불연속을 충분히 밝히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 과학은 이론적 맥락에서와 실천적 맥락에서 서로 다른 모양새를 띠고 있다. 전통적으로 과학과 기술은 한덩어리를 이루지 않았다. 과학과 철학이 한덩어리를 이루고 예술과 기술이 한덩어리를 이루었다. 'techn '와 'philosophia'가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과학-철학이 분리되었으며 동시에 기술-예술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20세기에 우리는 과학-기술 연합체와 철학-예술 연합체가 탄생한 것을 보았다. 이것은 (산업)자본주의의 탄생과 더불어 세계에 대한 인식이 타자에 대한 기술적 정복에 연계되면서 이루어졌다. 지식과 권력의 이런 관계는 'Knowledge is power'라는 베이컨의 말과 'Savoir pour pouvoir'라는 꽁트의 말에 압축되어 있다. 오늘날 과학은 우주의 비밀에 대한 '관조'가 아닌 일정한 기술 개발을 전제로 하는 '프로젝트'에 봉사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의 기초는 프로젝트이다. 과학은기술을 전제하며, 기술은 기업을 전제한다. 나아가 (그 값이 수십억, 수백억에 이르는) 거대한 또는 정밀한 기계를 전제하지 않으면 연구할 수 없는 현대 과학의 속성은 과학을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와 연결시킨다. 이제 과학은 철학과 거의 관계없는 세속적 행위로 화한 것이다.






상식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 역시 이론적 맥락과 실제적 맥락에서 전혀 다른 관계를 맺는다. 이론적인 맥락에서, 상식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형성한다. 일상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은 소통이 어려운 상이한 존재론에 기반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일상 언어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적 존재론에 기반해 있으나, 과학의 세계는 갈수록 이 세계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오늘날 미시 세계에서의 '존재들'은 실험 장치나 수학이 없이는 확인할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러나 두 세계는 기술을 통해서 이어진다. 유체역학은 세탁기를 통해, 전자기학은 TV를 통해, 통계역학은 화장품을 통해 현실로 내려온다. 과학을 응용한 기술은 생활세계 자체를 급격히 개조해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컴퓨터로 점을 친다. 고도의 합리적 과학기술과 미개 시대의 점이 하나로 엮이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과학적 합리성과 자본주의-기술의 질주, 그리고 대중의 일상적 문화가 기묘하기 이를 데 없는 방식으로 얽혀 있는 세계이다. 순수한 과학도 없고, 소박한 일상도 없다. 과학도 일상도 결국 자본주의-기술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형이상학은 이런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서 존재한다. 과거에 형이상학은 현실로부터 멀어지려는 관조적 활동이거나(예컨대 플라톤의 철학) 국가의 통치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는 거대 이론이었다(예컨대 성리학). 근대에 사람들은 형이상학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배척했다. 그러나 현실 자체가 근대인들의 꿈과는 반대로 철저하게 자본에 의해 식민화된 오늘날, '프로젝트'를 거부하는, (이론적이든 실천적이든) 분업/분과화을 거부하는, '실용성', '생산성'을 거부하는, 물질적 조건(실험 기구 등)을 거부하는 형이상학적 사유는 그 자체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의 몸짓을 담고 있는 담론인 것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사람들의 행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암암리에 세계란, 사물이란, 인간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인식(가장 넓은 의미)을 깔고 있다. 생명체가 무기물과 전혀 다른 존재라는 '존재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동물들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






형이상학이란 오늘날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가장 강력하고 일반적인 사물 인식, 세계 인식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저항이다. 이론적으로 그것은 분과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기술의 시녀가 된 과학적 지식들을 통합해 (이제는 누구도 관심이 없는) 세계의 근원적이고 종합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행위이며, 실천적으로는 모든 것이 (자본의 잣대에 따른) 실용성에 의해 평가되는 오늘날, 사판에 대한 관심이 이판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는 오늘날, 세계와 사물을 순수한 눈으로 대하려는 저항의 몸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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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badinos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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