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한여름이라면 더위에 허덕이고 있을만한 시간.
단지 겨울이라는 이유로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서늘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강추위라..
핑계가 그럴듯하다.
내 방에서 벗어나 거실로 나오면 몇 일째 엉망진창인 모습의 거실과 부엌 그리고 아이들방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주섬주섬 치워보기도 하지만, 나갔다오면 결국 똑같길래 그냥 언니네 식구가 대구에 내려가는 일요일까지 버텨 볼 요량이다.
심한가?;
세탁기 상자 옆이라도 정리를 해 볼까 해서 앉았다가 책꽂이에 책들을 눈으로 훓는다.
읽고 있는 책이 몇 갠데, 또 새로운 거리를 찾아 헤메는 꼴이라니..
몇 달 전 읽다 말았던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옆에 '말들의 풍경'이 보인다.
뭔가 익숙한 제목이다.
뽑아드는 순간 무언가 스스륵 바닥으로 떨어지길래 주워 보았더니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
초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
초는 싫다.
초가 아닌 초.
이 말에 인간의 한계가 있다.
초가 아닌 모습을 한 초는
역시 초일 뿐이다.
그러나 초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
초가 타는 것은
-예를 들어 곰모양의 초라든가
스누피 모양의 초라든가-
초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
그것들을 태워 없애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습이 달라도
초는
초일 뿐이다.
그러나 그 단서.
초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이라는,
그것은 견디기 힘들다.
초는 초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란,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기
힘든 것처럼.
93.5.18
=======
아는 사람들은 알테다.
이게 누가 쓴 것일지..
읽으면서 얼마 전 명희언니네 놀러갔다가 먹은 눈사람 케익이 생각났다.
파리바게트에서 크리스마스를 겨냥하여 특별히 제작, 판매했던 눈사람 케익.
이제 겨우 22개월된 정우가 순진무구한 눈빛을 하고서 아무도 섣불리 손대지 못 하고 있던 눈사람모양의 케익의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눈을 손가락으로 쿡 찍었을 때 우리는 경악했다. 물론 그 때의 우리 감정이란 끔찍함에 몸둘 바를 모르고 몸서리치는 그런 뜨악함따위는 아니었다. 연이은 우리들의 포크질이 눈사람의 몸을 파먹을 때에도 '느낌 되게 이상하다'따위의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말이다. 케익은 단지 케익일 뿐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덕분이겠지?
언제부터 생겨난 버릇일까?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혼자서 얘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동화책을 보면 진짜 그런 일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나는건 철이 없어서 그런 것 뿐일까? 한동안 재윤이가 좋아했던 '북극으로 가는 기차'는 정말 있을 법하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를 비롯 너구리같은 게임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어렸을 때 셋째언니가 선물로 사주었던 '황금동전의 비밀' 탓을 하고 싶다. 게임속 인물들이 그 안에서 자기들의 생활을 꾸려나가며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마다 괴로워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그 책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절대 폭탄이나 무기가 오가고,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 무언가가 죽고 다치는 게임은 못 하게 되었다. 심하게 멍청한 행동일지라도..
고등학교 때는 한동안 '바보'라는 단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왠지 쓰면 안 될것만 같은 단어(실제로 그로부터 꽤 오랫동안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걸 회피했었다, 사실 지금도 그다지 즐겨 쓰지는 않는다, 아주 좋은 의미일 때를 제외하곤). 흔히들 나이에 걸맞는(사회가 정해놓은) 행동을 요구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적당한 반응을 보이지 못한 사람에게 '바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걸테다. 내가 고민했던건 '바보'라는 단어가 무지하게 속상하고 섭섭할 것 같아서. 하필이면 왜 자기한테 그런 의미를 부여해서 언제나 사랑받지 못 하는 단어가 되어버리게 한 건지에 대해 무척이나 마음아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심하게 비정상적인거지? -_-; 그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정 '바보'의 의미에 대해서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했던듯한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ㅋ 예전 일기장 어딘가를 뒤져 보면 남아있을수도...;
오후 네시에는 나갔어야 하는데 벌써 세시 오십오분이군.
씻고 나가면 해지겠다.
큰 일인걸..
* 오늘은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폴 공연날이다. 1년 만인걸? :D
예년처럼 따뜻한 기운으로 무장한 채 돌아올 수 있기를!
단지 겨울이라는 이유로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서늘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강추위라..
핑계가 그럴듯하다.
내 방에서 벗어나 거실로 나오면 몇 일째 엉망진창인 모습의 거실과 부엌 그리고 아이들방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주섬주섬 치워보기도 하지만, 나갔다오면 결국 똑같길래 그냥 언니네 식구가 대구에 내려가는 일요일까지 버텨 볼 요량이다.
심한가?;
세탁기 상자 옆이라도 정리를 해 볼까 해서 앉았다가 책꽂이에 책들을 눈으로 훓는다.
읽고 있는 책이 몇 갠데, 또 새로운 거리를 찾아 헤메는 꼴이라니..
몇 달 전 읽다 말았던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옆에 '말들의 풍경'이 보인다.
뭔가 익숙한 제목이다.
뽑아드는 순간 무언가 스스륵 바닥으로 떨어지길래 주워 보았더니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
초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
초는 싫다.
초가 아닌 초.
이 말에 인간의 한계가 있다.
초가 아닌 모습을 한 초는
역시 초일 뿐이다.
그러나 초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
초가 타는 것은
-예를 들어 곰모양의 초라든가
스누피 모양의 초라든가-
초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
그것들을 태워 없애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습이 달라도
초는
초일 뿐이다.
그러나 그 단서.
초가 아닌 다른 모습을 한이라는,
그것은 견디기 힘들다.
초는 초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란,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기
힘든 것처럼.
9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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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들은 알테다.
이게 누가 쓴 것일지..
읽으면서 얼마 전 명희언니네 놀러갔다가 먹은 눈사람 케익이 생각났다.
파리바게트에서 크리스마스를 겨냥하여 특별히 제작, 판매했던 눈사람 케익.
이제 겨우 22개월된 정우가 순진무구한 눈빛을 하고서 아무도 섣불리 손대지 못 하고 있던 눈사람모양의 케익의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눈을 손가락으로 쿡 찍었을 때 우리는 경악했다. 물론 그 때의 우리 감정이란 끔찍함에 몸둘 바를 모르고 몸서리치는 그런 뜨악함따위는 아니었다. 연이은 우리들의 포크질이 눈사람의 몸을 파먹을 때에도 '느낌 되게 이상하다'따위의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말이다. 케익은 단지 케익일 뿐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덕분이겠지?
언제부터 생겨난 버릇일까?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혼자서 얘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동화책을 보면 진짜 그런 일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나는건 철이 없어서 그런 것 뿐일까? 한동안 재윤이가 좋아했던 '북극으로 가는 기차'는 정말 있을 법하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를 비롯 너구리같은 게임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어렸을 때 셋째언니가 선물로 사주었던 '황금동전의 비밀' 탓을 하고 싶다. 게임속 인물들이 그 안에서 자기들의 생활을 꾸려나가며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마다 괴로워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그 책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절대 폭탄이나 무기가 오가고,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 무언가가 죽고 다치는 게임은 못 하게 되었다. 심하게 멍청한 행동일지라도..
고등학교 때는 한동안 '바보'라는 단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왠지 쓰면 안 될것만 같은 단어(실제로 그로부터 꽤 오랫동안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걸 회피했었다, 사실 지금도 그다지 즐겨 쓰지는 않는다, 아주 좋은 의미일 때를 제외하곤). 흔히들 나이에 걸맞는(사회가 정해놓은) 행동을 요구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적당한 반응을 보이지 못한 사람에게 '바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걸테다. 내가 고민했던건 '바보'라는 단어가 무지하게 속상하고 섭섭할 것 같아서. 하필이면 왜 자기한테 그런 의미를 부여해서 언제나 사랑받지 못 하는 단어가 되어버리게 한 건지에 대해 무척이나 마음아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심하게 비정상적인거지? -_-; 그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정 '바보'의 의미에 대해서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했던듯한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ㅋ 예전 일기장 어딘가를 뒤져 보면 남아있을수도...;
오후 네시에는 나갔어야 하는데 벌써 세시 오십오분이군.
씻고 나가면 해지겠다.
큰 일인걸..
* 오늘은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폴 공연날이다. 1년 만인걸? :D
예년처럼 따뜻한 기운으로 무장한 채 돌아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