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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아타

dailylife / 2008. 3. 3. 17:32

전시 기간 : 2008년 3월 21일 ~ 5월 25일  
 

로댕갤러리는 최근 국제무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진작가 중의 한 사람인 김아타의 개인전을 마련한다.
80년대 중반이후 <정신병자>와 <인간문화재>, <세계-내-존재>, <해체>시리즈를 통해 강렬한 사진작업을 선보였던 작가는 90년대 중 후반 <뮤지엄 프로젝트(Museum Project)>를 통해서 국제무대에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인간 존재의 문제를 하나의 화두처럼 다루어 온 작가는 투명 아크릴 박스에 알몸의 인간을 집어넣는 <뮤지엄 프로젝트>를 통해서 인간과 사물에 대한 기존의 낡은 관념과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자 하였다.

2002년 이후에는 <온 에어(On -Air)>프로젝트를 통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자신의 철학을 더욱 심오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아시아작가 최초로 뉴욕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여 국제화단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장시간 노출과 다중노출 기법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온 에어> 프로젝트는 남북 분단의 상징적 공간인 비무장지대, 뉴욕의 번화가나 북경의 천안문 거리, 나아가서는 축구경기장의 모습이나 자기독백의 시간, 섹스장면 등 특정한 장소나 주제를 선택하여 시간 속에 점차 사라져 가는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환기시킨다.

이번 전시에는 2002년 이후 지속해 온 <온 에어> 프로젝트의 대표작이 선보일 예정이며, 한국과 뉴욕, 중국, 최근 인도작업의 일부가 포함될 계획이다.
아울러 초기작업을 포함하여 그 동안의 그의 주요 작업들을 일별해 볼 수 있는 미디어 공간도 마련하였다. 이번 로댕갤러리 김아타 개인전은 장노출과 다중노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사진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가능한 방법들을 실현하고 있는 작가의 독특한 사진미학과 존재에 관한 작가 특유의 동양적 사유방식을 엿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Monologue of Ice 
- Atta Kim, ON-AIR Project, Monologue of Ice, 25Hours, 2004

Rhythm & Blues 
- Atta Kim, ON-AIR Project, Rhythm & Blues, 1Hour, 2004

Self-Portrait Series, 100Countries/ 100men 
- Atta Kim, ON-AIR Project, Self-Portrait Series, 100Countries/ 100men, 2004

New York Series, 8Hours 
- Atta Kim, ON-AIR Project, New York Series, 8Hours, 2005

 
- Atta Kim, ON-AIR Project, Portrait of Mao, 2004



독창적인 예술을 이끌어 내는 3단계 - 관조, 망아, 해체
"사진가로서 사상이나 철학이 자리를 잡기까지 3가지 논리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가 '힘의 논리'입니다. 여기서 힘이란 '파워'가 아닌 사람의 신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따라서 어떠한 일을 행하든 힘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끼)의 논리'입니다. 흔히 "저 사람은 끼가 있어."라고 말들 하잖아요. 이는 힘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정신의 논리'를 들 수 있습니다. 정신은 혼의 정제된 개념으로, 정신 안에서 사상이나 철학을 꽃 피울 수 있는 것이죠."

또한 김아타 작가는 남들이 하지 않는 독창적인 예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3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단계가 '관조'이다 관조는 대상도 있고 나도 있는 상태로 나를 보고 상대를 바라보며 이해하는 관점이다. 두 번째는 '망아', 나를 뒤로한 체 대상만을 관찰하는 과정이다. 마지막 단계가 바로 '해체'다 해체는 양망 즉 나도 대상도 없는 상태다. 해체 과정을 통해야만 진정한 빈상태가 되고, 그래야 본질을 담아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비운다는 것은 지독한 인내와 철저한 수행, 뼈에 사무치는 고독이 밀려드는 상태를 지나야 얻을 수 있다."면서 "스스로도 일체의 기억과 모든 이미지를 걷어내고 빈 상태에서 카메라를 들고 작업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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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흥미로운 사진 작가 한 명 발견
미용실 따라갔다가 럭셔리 2월호에서 제목 "이 사진은 곧 25억이 된다. 두고 보라"에 혹해서
바로 페이지 찾아 갔더니 모처럼만에 무척 구미가 당겨서 꼭 가봐야지! 했더니 왜 하필이면 21일이니? ㅠ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 그 전에 출국하게 되면 억울해서 어쩌라고!!!!

책도 한 권 썼다던데 간만에 교보문고에 들러 찾아봐야겠다.
미련을 가득 담은채 미용실 탁자에 고이 놓아두고 오긴 했지만 솔직히 참 찢어오고 싶었더랬다-
지나고 나면 버려질 그 페이지에 담긴 사진들이 갖고 싶어서 ㅠ
방에다 걸어 두면 참 자극이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고작 3장하고 반페이지 밖에 안 되는 잡지를 살 수도 없고 -.-;

오늘은 모처럼 하이퍼텍 나다를 찾아 '터질거야'를 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교보엘 가야 하나 싶다.
터질거야와 조금씩조금씩은 어둠의 경로로......(못 찾으면 어쩌지?;;;;)




아래는 LUXURY 2월호에 실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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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곧 25억이 된다
두고 보라
지난해 11월 8~12일에 열린 제1회 뉴욕 아시안 컨템퍼러리 아트 페어ACAF NY. 김아타의 사진, ‘온에어 프로젝트 : 뉴욕 타임스 스퀘어’(바로 이 사진)는 무려 28만 달러(약 2억5000만 원)에 팔렸다. 총 14작품, 3일 만에 147만 달러(약 13억4000만 원)의 거금이 김아타의 손에 쥐어졌다. 그럼에도 김아타 이름 석 자는 한국의 대중에게 낯설다. 그는 누구인가. 그의 사진은 ‘무엇’인가.


(위쪽) ON-AIR 프로젝트 110-2, (New York 시리즈), 188×248cm, 2005(8시간 노출)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2000년 3월 5일, 세계에서 가장 큰 사진 비엔날레인 휴스턴 포 토페스티벌
‘사진의 제국’에 비유되는 <어패처Aperture>의 편집장 멜리사가 김아타에게 물었다. 미국 패션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언론계 인사가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Anna Wintour라면, 사진 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이는 <어패처>의 멜리사 해리스Melissa Harris다. 하루 최고 2700여 통의 포트폴리오가 간택을 기다리며 <어패처>의 사무실에 도착한다. 그가 김아타를 ‘찍었다’. 김아타는 기적이라 회상한다. “<어패처>에 특집 기사로 소개되는 건 그 순간 역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1년에 네 번 출간되는 이 잡지는 이미 사진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휴스턴 포토 페스티벌에서 그가 나를 찾았을 때 나는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 한창 작업 중이던 또 다른 프로젝트의 사진을 완성,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3년 후, 전날의 뻐근한 생일 파티로 채 술이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를 만났다. ‘너 미쳤니? <어패처>가 어떤 곳인지나 아니?’ 하고 황당해하더라. 어쨌거나 우린 가까워졌고 그는 내 사진집을 출간하겠노라고 했다.”

“전 세계 전쟁 사진을 모두 보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전쟁을 박스에 넣을 생각을 했느냐?”
멜리사가 물었고 김아타가 답했다.
“당신은 사진을 통하여 전쟁을 보고 있지만, 나는 전쟁을 통하여 인간을 보고 있다.”
The Museum 프로젝트 #79, . 한국전쟁에 참전한, 젊음과 용기를 내주고 상처한 육신을 얻은 상이군인들이 유리 박스 안에 마네킹처럼 들어 있다. 김아타는 용산전쟁기념관을 보고 보훈병원으로 가 그들을 만났다. 3개월간의 대화. 참전 용사들은 성기까지 모두 노출한 알몸으로 유리 박스 안에 들어갔다. 의족을 해체하고, 목발을 짚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은 충격이고, 아픔이다. 김아타가 던진 문장은 그가 어떤 사상을 갖고 사진을 찍는지 명징하게 대변한다. “나는 아직도 전쟁을 기념한다는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팩트’ 자체보다 ‘팩트’ 너머의 관계와 본질에 천착한다.

(왼쪽) The Museum 프로젝트 #79, 시리즈, 120×160cm, 1999
(오른쪽) ON-AIR 프로젝트 <마오의 초상> 옆에 선 김아타.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다.

“김아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점에서 특이하고 탁월하다.”
부산대학교 동양미학과 이진오 교수의 말이다.
“철학적 사고가 극히 참신한 작가!” <뉴욕 타임스>의 글이다.
2억5000만 원에 팔린 뉴욕 사진을 본다. 무려 8시간의 노출. 현란한 광고판과 우뚝 솟은 빌딩은 그대로이되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차량과 인파는 빛의 알갱이처럼 사라졌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 김아타의 철
학이고 그 사상에 뉴욕은 반응했다. 그의 작품은 모두 이런 식이다. 마오(마오쩌둥)의 초상을 얼음으로 제작해 72시간에 걸쳐 천천히 녹아들어 결국 한 줌의 물로 명멸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100여 명의 얼굴 사진을 합성해 하나의 창조된 얼굴을 만들어놓고 개인의 정체성에 관해 묻는 식이다. ‘존재’와 ‘관계’는 그의 최대 화두다.
2004년, <어패처>의 편집장이 약속한 대로 김아타의 사진집 가 발간되었다. 전 세계 유명 서점에 김아타의 책이 걸렸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다. 2006년, <어패처>와 함께 세계 사진업계의
‘헤게모니’를 양분하는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한국인이 이곳에서 전시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한 유학생이 울먹이며 말했다. 좀처럼 촬영 허가를 하지 않
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그에게만은 내부 촬영을 허가했다. 이미 2002년 런던 파이돈 프레스사가 선정한 세계 100대 사진가에 이름을 올린 그는 그렇게 뉴욕의 별이 되었다. 다소 과장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그를 수식하는 ‘뉴욕의 신화’는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위쪽) ON-AIR 프로젝트 047-1, <셀프 포트레이트> 시리즈, 233×188cm.
오른쪽에 있는 100명의 얼굴이 합쳐져, 이 한 장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그를 만나러 간다. 미국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는 오는 3월 로댕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위해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그를 인터뷰하러 가는 심정은 말랑말랑 편하지 않았다. 그의 자서전 를 읽은 이라면 대부분이 그러할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서양 철학에 빠져 살고, 불교의 선禪에 탐닉하며, 머릿속의 ‘관념’과 치열한 전투를 해온 이의 글은 감성 코드가 아닌 암호와도 같은 철학 코드로 점철돼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흥미로웠다. 그의 첫인상 덕이 컸다. 도도하고 위압적 아우라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 그는 강호동과 비슷한 경상도 사투리로 말했고, 무엇보다 많이 웃었다. 단단한 사유의 세계가 있었지만 과시하
려 들지 않았다. 첫 대화는 이러했다. “짧은 머리에 검정 옷을 입고 계시니 강남 상권을 주름잡는 ‘조폭’ 같습니다(실제 그는 크다. 신장이 185cm이고 몸무게가 85kg이다)”
“그래요? 조폭이 강남 상권을 주름잡습니까.” “뉴욕에 진출하실 때 언어 장벽이 전혀 없었나요?” “영어요? 아, 기게 잘 안 되네~ 항상 통역이 붙씁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내 작품이 너무 무겁고 어렵다고 했다.” 자서전에서 나와 있는 문구다. 뉴욕의 신화가 된 지금, 한국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한국이 내게 무관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무관심이 없었다면 성공하는 데 지금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옛말에 팽이는 세게 치면 칠수록 더 빨리 돈다고 하지 않던가. 한국이 나를 끌어안지 않았지만 나는 우리나라를, 나의 뿌리를 소중히 생각한다. 한국의 환경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배고픔이든, 단단하지 않은 교육 체계든 그 모든 환경과 정서가 내 마음과 ‘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주류’가 아니었으므로 배척도 있었을 것 같다.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많은 돈을 벌었다. 당신에게 부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땅을 사는 데 관심이 없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정릉의 집 한 채를 빼고는 다른 집이나 토지가 전혀 없다. 집은 없어도 원하는 차만 탈 수 있으면 된다. 작품을 한 점도 못 팔 때조차 집은 없을지언정
차는 갈망하는 것을 탔다. 지금은 레인지로버를 타는데 언젠가 벤틀리를 타고 싶다. 배기음을 듣고 ‘돌아버렸던’ 기억이 선연하다. 북소리가 사람 심장 소리와 똑같은 것을 아는가. 그런데 벤틀리의 배기음 소리가 북소리, 다시 말해 사람 심장 소리와 똑같다. 가슴을 울리는 그 저릿하고 생생한 소리! 아, 잊히지 않는다.

그간 충분히 윤택한 삶을 살았으므로, 부자가 되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가?
그렇지 않다.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궁하면 통하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신념으로 작업한다. 내가 하는 작업은 스케일이 크다. 한 프로젝트의 사진을 찍을 때마다 많게는 1억이 들어간다. 충북 보은에서 폐생수 공장을 빌려 작업한 적이 있다. 약 1000평 규모를 수백 장의 얼음으로 가득 채운 후 10~11일에 걸쳐 얼음이 녹는 과정을 담는 작업이었다. 1년 정도의 준비, 실행 기간 동안 40~50명의 인원이 투입되었고 약 1억이 소모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찍은 작품들이 한국에서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수억의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빚을 지금은 모두 갚았지만 당시에도 빚에 삶을 저당 잡히거나, 기죽은 삶을 살진 않았다. 자신이 있었다. 확신이 있었다. 나 자신의 능력을 믿는 오만한 자만심이 아니라, 내 작품이 갖는 유일성에 관한 확신이 있었다. 언젠가 중앙대에 다니는 재학생 두 명이 나를 인터뷰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패처>가 그토록 유명한 잡지라면 내 10년 안에 나의 특집을 거기에 싣겠다.’ 그 약속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어패처>에서 나를 주목한 것이 얼추 그로부터 10년 후다.

당신은 말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하여 사물과 세계에 관한 나의 정신은 자유로워졌다. 관념을 비워내지 않으면 그 어떤 새로운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무엇이고 관념을 비운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좋은 사진을 찍는 것과 어떤 관계인가?
학창 시절, 세상에 의문이 많았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프로이트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일본의 전설적 사무라이인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눈을 감고 검술을 수련하는데 이는 내 ‘이미지 트레이닝’의 기초가 되었다. 관념을 비우기 위해 나는 세상의 모든 것과 부단히, 깊이 대화한다. 돌만 보며 3~4시간을 보내는 것은 기본이다. ‘사랑’을 예로 들어보자. ‘사랑’ 하면 당신 안에 있는 수많은 관념이 떠오를 것이다. 사랑의 경험, 영화 속의 사랑, 꿈꾸는 사랑 등등등. 당신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사랑의 모든 ‘관념’이 빠져나오면 ‘해체’의 과정에 이른다. 나도 없고 대상도 없는. 그리고 그 여백 안으로 비로소 새로운 어떤 것이 움튼다. 그 전체적 과정을 ‘대화’라고 한다. 대화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을 보는 것보다 스스로를 아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람에게 나는 사진의 기술보다 먼저 당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탐구하라 말한다. 진정한 자아를 찾으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 된다. 나는 그것을 아용아법我用我法이라 부른다. 나는 나의 법을 사용했으므로 성공할 수 있었고 당신 역시 그러할 것이다.

철학적이다. 사상과 철학에 익숙해져 있는 당신이라면 세간의 화제인 <무한도전>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지 않을 것 같다.
그 여섯 명이 나와서 하는 것 말인가? 본다. 그런데 솔직히 웃긴 것은 잘 모르겠다. 최근 KBS에서 제작한 <차마고도>를 열심히 본다. 오락성 프로그램보다는 자연 혹은 철학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왼쪽) <인간문화재> 시리즈, <김금화>, 80×90cm, 1990 어떤 평론가는 프린트된 이 사진을 보고 ‘핵폭탄을 맞은것 같다’고 했다.
(오른쪽) 고개 숙인 김아타. 그러나 실제 그는 사진 한 장 못 파는 가난한 예술가일 때도 결코 고개 숙여본 적이 없다. 그는 “내 작업의 독창성과 유일성을 믿는다”고 했다.


당신의 자서전에서 가장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운 대목은 인간문화재이자 무당인 김금화와의 만남이다. 당신은 이렇게 썼다. “그녀와 단둘이 만났다. 한국 최고의 무당 김금화. 신비한 에너지를 풀기 위하여 미국 NASA에서 과학으로 접근했지만 결국 미스터리만 남긴 채 돌아갔다는 서해안 배연신굿의 중요무형문화재이며 한국 최고의 강신무降神巫….” 정연하되 날카로운 눈매로 카메라를 꿰뚫듯 응시하고 있는 무당의 아우라는 사진 밖으로 튀어나올 듯 역동적이다. 그 사진만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그녀의 기, 정말 대단했다. 그는 내가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했다(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녀와 엄청난 기 싸움을 했다. 그런 기 싸움은 처음이었다. 스태프들은 그 분위기의 압박을 못 이기고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사진을 안 찍겠다는 그녀는 결국 카메라 앞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진을 언급하지만(사진을 보자마자 주저앉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은 아니다. 그녀의 기가 사진에 그대로 살아났기 때문이다. 인간문화재들의 몸 밖으로 표출되는 내밀한 기운과 정신을 찍고 싶었는데, 그녀의 기에 가려 그 부분이 드러나지 않았다.

인도에 다녀온 것으로 안다. 다음 프로젝트의 핵심은 인도인가?
그렇다. 뉴욕과 중국을 잇는 연속된 ‘온에어’ 시리즈다. 인도의 주제는 ‘만다라’다. 인도를 만다라 대륙이라 하지 않던가. 만다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뜻하므로 나는 그곳에서 찍은 1만 장, 3만 장의 사진 이미지를 모두 합쳐 각각 하나의 이미지로 재창조해낼 것이다. 극한의 카오스를 미니멀의 정수로 보여줄 것이다. 그 옛날 붓다는 이 우주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은하계보다 1000개가 더 많은 은하계가 존재(현재 과학적으로 발견된 것이 260여 개다)한다고 믿었다. 흔히 은하계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많다고 하지 않던가. 지구상에서 우주와 가장 근접한 곳이 있다면 그곳은 인도다. 그곳의 사진을 통해 나는 또 다시 존재에 관해 말 할 것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성공과 미래. 영감을 위해 진군하듯 뉴욕으로 떠난다. 그들이 뉴욕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으면 좋겠는가.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 할 수 없다.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뉴욕 스케치>란 책을 출간할 건데 그걸 보면 되려나….(웃음)

당신의 사진이 2억5000만원에 팔렸다. 만족하는가.
솔직히 아직 ‘배고프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작가인 안드레아스 구어스키Andreas Gursky의 경우 내 작품 사이즈와 비슷한 크기의 사진이 점당 25억을 받는다. 그의 담론보다, 그의 사유의 공간보다 나의 담론과 사유 공간이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진 값은 결국 국가 경쟁력과 같다. 우리나라의 GNP가 2만 달러를 넘지 않지만 독일은 4만 달러에 육박한다. 게다가 독일 철학의 깊이는 우물처럼 깊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 있다. 이를 이루지 못하면 억울해서라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작품을 사는 것이 맞겠다. 어떠한가?
그렇다. 지금 사야 한다.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관심없다. 다만 나는 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욕망 덩어리라 할 만큼 욕심이 많다. 나란 존재는 지구상에 단 하나이므로. 나는, 우리 개개인은 모두 위대하고 위대해야 한다.

Kim Atta는 1956년생. 올해 52세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관념 혹은 상식을 해체, 동양 사상이 근간이 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유리 박스 안에 성性과 폭력, 개개인의 아픔과 상처를 담은 ‘사적인 박물관The Museum’ 시리즈로 주목받았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짐을 표현한 ‘온 에어ON-AIR’ 시리즈로 일약 세계적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세계적 명성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아트 컬렉션 등 수많은 미술협회와 갤러리, 박물관에 사진이 소장되어 있다. 지난해 말 개최된 제1회 뉴욕 아시안 컨템퍼러리 아트 페어. 개최 3일 만에 10여 점의 작품이 ‘억’ 소리 내며 불티나게 팔려나가자 작가는 이상 과열을 우려, 작품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Posted by nobadinos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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