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말이 없으신 우리 아부지는 가끔 내가 참 듣고 싶은 말을 시기적절할 때 쏴주신다.
시간을 잘 못 맞춰서 그런가... 전화할 때마다 집에 아무도 없더니 오늘은 두번째 건 전화에 응답이 있었다.
엄마가 받자마자 아빠가 술에 만땅 취하셔서 주절주절하신다며 받아보라 하셨다.
"다 필요없다, 건강하고 니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으면 됐다. 그걸로 된거다. 류XX, 우리 딸래미 최고다."
"내가 원래 70까지만 살고 고만 살라켔는데 니 성공하는거 볼라믄 100살까지 살아야겠네"
- 100살까지 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100살까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사는게 중요하다. 그래야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비행기 태워서 이곳저곳 관광도 시켜드리지. 비행기 잘 탈 만큼 건강하셔야 한다. 했더니 기분좋게 웃으시며 그러마 하신다.
고작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얼마나 술을 드신건지 혀가 왕창 꼬부라지셔서 계속 말을 하시는 아부지.
엄마의 전언에 의하면 현관 앞에 앉아 신발도 안 벗고 집에 안 들어가시겠다고 한참을 버티셨단다....
기분좋게 취하신 것 같기는 한데 요즘 술 안 드신다더니 어디서 저렇게 술을 많이 드신건지...;;
뭐, 그래도 막내 딸래미한테 바라는 것도 분명 있으셨을텐데 저리 말씀해 주시니 참 감사하다.
정말 우울의 늪에 빠져 감당할 수 없을 때 집에 전화를 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코가 시큰거리고 짠하게 만들어주는 그 누구보다 힘이 되는 사람들의 응원.
난 오늘도 영감한테 '여시'라는 말을 다섯번은 들었다. 메신저로...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이 당시 기분에 듣고 싶은 말들을 해줘서 그런지 나때메 위로가 된단다.
글쎄... 그닥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닌터라 그런 말을 들어봐야 사실 내가 이중인격자 같아서 오히려 불편한데 말야.
그렇다고 마음이 온갖 망신창이가 되어 있는 사람한테 소금을 끼얹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고...
뭐, 여튼 늘 떠날 준비를 한 켠에 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호의가 달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