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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scrap / 2014. 1. 16. 22:23

 

 

 

 

 

 

 

p25

부자 되기는 소박하고 상식적인 희망이다. 하지만 소박하고 악의 없는 상식적 희망도 악마적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한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개인은 소박한 꿈을 따를 뿐이지만, 부자 되기가 유일한 상식이 되는 순간 몰상식이 시작된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겠다고 부동산 투기에 나서고, 이과생들이 기초과학을 멀리하고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모두 의사만 되려 하고, 모든 의사 지망생이 성형외과 전문의를 선택하는 상황은 상식에서 분명 벗어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몰상식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 각각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 단지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p63

 열광이라는 열병은 10대 청소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차라리 통과의례 같은 10대 청소년들의 대중문화 열광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추억은 커녕 악몽이 되는 군중은 정치적으로 열광하는 성인들의 떼이다. 스타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은 세상이 말세라는 느낌을 주지만, 그 느낌은 그저 기우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열광하는 성인들이 군중을 형성하면 불길한 느낌은 기우에 그치지 않는다. 군중은 때로 악몽을 사실로 만들기도 한다.

 

p96

 기술관료들은 원자력 발전소가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로또에서 연속으로두 번 1등에 당첨될 확률처럼 희박하다고 우리를 안심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발생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적은 한 번의 사고가 불러일으키는 위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큼을 시인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에 쓰나미가 닥칠 확률은 비가 올 확률과 비교해 보자면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막상 그 제로에 가까운 일이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한다. 실험실에서 발생한 위험은 다시 변수들을 통제해 재실험을 하면 그만이지만, 실험실 외부에서 발생한 위험은 그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그날 이후'에야 비로소 가시화되는 위험 앞에선 계급도 국경도 인종도 성별의 차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위험이 벌어진 '그날 이후' 모든 인간은 위험에 동시에 노출된다. 모든 이에게 공평한 기회가 부여되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희한한 방식으로 근대화의 끝자락에서 실현된다.

 

p114

 사람은 무리를 짓는다. 무리를 지어야만 생존할 수 있어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사람이 속한 무리는 때로 개인보다 더 많은 것을 결정한다. 어떤 무리에 속하는가, 혹은 어떤 무리가 그 사람을 받아들여 주느냐에 따라 개인이 생존하는 모습은 달라진다. 어느 대학의 동창회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개인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은 증폭될 수도 있고 축소될 수도 있다. 무리가 제공하는 이득의 달콤함에 눈을 뜬 사람들이 집단을 이룰 때, 패가 형성된다. 패거리는 이익을 기대하며 만들어진 무리이다. 그래서 패거리는 그 안에 속한 사람과 속하지 않는 사람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패거리를 구성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패거리끼리 나누어 갖는 이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패거리가 이익집단화된 패당은 없어도 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패당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패당이 싫다고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살아갈 수도 없다. 패당을 물리치는 일은, 패당과는 다른 인간의 무리를 만듦으로 가능하다. 이런 인간의 무리를 우리는 '이웃'이라 명한다. 이웃한 사람들끼리 만들어 내는 무리인 이웃은 패당처럼 당장의 이익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패당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급조된, 그렇지만 이익이 확실하게 보장된다면 매우 강한 연대감으로 뭉치는 무리이다. 하지만 이웃은 다르다. 이웃은 급조될 수 없다. 이웃은 급조될 수 없는 무리이기에, 이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패당과 달리 형성되면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Posted by nobadinos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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