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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scrap / 2008. 4. 13. 05:16




요즘 재윤이는 품앗이를 시작했어요.

친구집을 매일 다니며 즐거워하고 있지요.

저는 차비도 아끼고 운동도 할겸 재윤이를 뒤에 태우고 양재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어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데 멀리 비행기가 날아가더군요.

뒤에 앉은 재윤,

"엄마, 저 비행기가 이모 비행기야?"

이모가 탄 비행기냔 얘기지요.

(아니지만 얘기가 길어지니까) "응, 맞아."

라고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이모 보고 싶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러게..."라고 답해줬지요.


잠시 뒤,

재윤이 왈,

"이모가 멀리 가서 슬프다..."

라고 하네요.


순간,

이놈이 벌서 슬픈 게 뭔지 아는 나이가 되었네 싶어 깜짝 놀랐답니다.


여러분도 놀랍지 않으세요?



----------------------------------------------------------------------------
싸이월드 행복한 우리집에서 무단펌질.
아아- 우리 재꽁이가 벌써 이모를 감동 먹일 만큼 컸구나! ㅠㅠ
애저녁에 싱숭생숭한 이모 맘을 어찌 알고 저렇게...





Posted by nobadinosemi.
, |

DOCOMO 2.0

scrap / 2008. 4. 8. 17:47


http://docomo2.jp/top.html#movie*904idebut*long



초호화판 광고 캐스팅!



 

Posted by nobadinosemi.
, |




no.9941 자기 성격이 더러운지 안 더러운지 살펴봅시다.


필 박사가 오프라 윈프리에게 해보라고 준 테스트입니다.
이거 한 번 하려고 돈까지 내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씀.
계속 읽어보세요, 해볼 만 할 겁니다.

이 테스트는 꽤 정확한 편인데다 하는데 2분 밖에 걸리지 않죠.
하고나서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 결과를 알려줍시다.

미리 컨닝하기 없기~! 아래로 스크롤 해 내려가면서 대답하세요.
과거의 당신이 아닌, 현재의 당신 모습을 알아봅시다.

필기도구와 종이를 준비하도록 하세요.
실제로 근래의 많은 주요 기업들에서는 채용자들과 사원들에게 이 테스트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테스트는 직원들의 인품을 알아보는데 도움을 주거든요.

테스트는 10개의 간단한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필기구와 종이를 준비해서 번호와 그 답을 써내려 가십시오.

1. 하루 중 제일 기분이 좋을 때는?
a) 아침
b) 오후나 이른 저녁
c) 늦은 밤

2. 나는 걸을 때, 보통
a) 보폭을 넓게, 빨리 걷는다.
b) 보폭을 좁게, 빨리 걷는다.
c) 머리를 들고,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덜 빠르게 걷는다.
d) 바닥을 보며 덜 빠르게 걷는다.
e) 아주 느리게 걷는다.

3. 사람들과 얘기할 때 나는
a) 내 팔짱을 끼고 서서
b) 두 손을 마주잡고
c) 한 손이나 양 손을 힙에 얹고
d) 얘기 나누는 상대방을 건드리거나 살짝 밀면서
e) 내 귀나 턱을 만지작거리거나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으면서

4. 편안히 쉴 때, 나는
a) 다리를 굽힌 채로 나란히 두고 앉는다 (여자들 얌전떠는-_- 포즈죠)
b) 다리를 꼬고 앉는다
c) 다리를 쭉 펴고 앉는다
d) 한 쪽 다리를 접어 깔고 앉는다

5. 뭔가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겼을 때, 나는
a) 아주 큰 소리로 즐거움을 숨기지 않고 웃는다
b) 웃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소리로 웃는다.
c) 조용히 소리를 별로 내지 않으며 웃는다.
d) 오히려 쑥스러운 듯한 미소. (우훗;;)

6. 파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나는
a) 사람들이 내 존재를 의식하도록 화려한 등장을 한다.
b) 아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둘러보며 차분히 들어선다.
c)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조용히 입장한다.

7. 완전히 일에 몰두한 채로 열심히 하다가 방해 받았을 때 나는
a) 휴식의 기회를 반갑게 맞이한다
b) 열라-_- 짜증이 훨훨 난다
c) 그 중간 어딘가 쯤.

8. 다음 중 제일 좋아하는 색은?
a) 빨강이나 오렌지
b) 까망
c) 노랑이나 연한 파랑
d) 녹색
e) 짙은 파랑이나 보라
f ) 하양
g) 갈색이나 회색

9. 잠자리에 들어서 잠들기 바로 직전에 나는
a) 몸을 똑바로 펴고 누운 포즈이다
b) 엎드린 채로 몸을 죽 편 포즈이다
c) 약간 몸을 둥글린 채로 옆으로 누운 포즈이다
d) 한 팔을 베고 있다
e) 머리를 이불 밑에 넣고 있다

10. 나는 이런 꿈을 자주 꾼다:
a) 낙하하는 꿈
b) 싸우거나 애 쓰는 꿈
c) 무엇이나 누군가를 찾는 꿈
d) 날아오르거나 떠오르는 꿈
e) 꿈은 잘 꾸지 않는다
f) 항상 좋은 느낌의 꿈이다

점수합산:
1. (a) 2 (b) 4 (c) 6
2. (a) 6 (b) 4 (c) 7 (d) 2 (e) 1
3. (a) 4 (b) 2 (c) 5 (d) 7 (e) 6
4. (a) 4 (b) 6 (c) 2 (d) 1
5. (a) 6 (b) 4 (c) 3 (d) 5 (e) 2
6. (a) 6 (b) 4 (c) 2
7. (a) 6 (b) 2 (c) 4
8. (a) 6 (b) 7 (c) 5 (d) 4 (e) 3 (f) 2 (g) 1
9. (a) 7 (b) 6 (c) 4 (d) 2 (e) 1
10. (a) 4 (b) 2 (c) 3 (d) 5 (e) 6 (f) 1

알파벳에 상응하는 숫자를 다 더합니다.

해석은 아래로.









::60점 이상::
주위 사람들은 당신을 "취급주의"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허영심이 있고, 자기중심적이며 극히 지배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당신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며 당신처럼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신과 너무 가까워질까 우려하며 당신을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51점에서 60점까지::
주위 사람들은 당신이 잘 흥분하고, 상당히 변덕스러우며, 충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러운 리더 타입으로, 빠른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과감하고 모험성이 있으며 무엇이든 한 번쯤은 시도해 보는, 찬스에 강하고 모험을 즐기는 타입으로 보여집니다.
당신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발하는 강렬함에 이끌립니다.


::41점에서 50점까지::
주위 사람들은 당신을 상큼하고, 발랄하고,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현실적이면서 늘 즐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든지 주위의 이목을 사로잡는 사람이지만 적당한 주제파악으로 교만해지지 않을 줄도 아는 사람이죠.
당신은 다정하고 친절하며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처진 기분은 업!시켜 주고 어려울 땐 도와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1점에서 40점까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당신은 현명하고, 신중하며, 조심스럽고, 현실적입니다.
또 당신은 똑똑하고, 재능과 능력이 있으면서 한편 겸손한 사람으로도 여겨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친구를 사귈 때 너무 급하거나 가볍게 접근하지 않으며,
한번 사귄 친구에게는 상당히 극진하고 또 자신도 그렇게 대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당신의 참모습을 알게 되는 사람들은, 당신의 친구에 대한 그 신뢰를 흔드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과, 한번 그 신뢰가 무너지면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주 오래 걸린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1점에서 30점까지::
친구들이 보는 당신은 집요하며 깐깐한 사람. 상당히 신중하고 대단히 조심스러우며, 느리고도 꾸준하게 전진하는 사람이지요.
당신이 무슨 일인가를 충동적으로 하는 모습을 본다면 친구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무슨 일이든 꼼꼼히 모든 각도에서 살펴본 다음 대부분 퇴짜를 놓는 사람으로 생각되어 지고 있으니까요.
친구들은 당신의 이런 모습은 주로 본인의 성격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1점 이하::
친구들이 보는 당신은 부끄럼을 많이 타고, 소심하며, 우유부단하고, 누군가가 곁에서 돌봐줘야만 하며, 본인의 일도 누군가가 대신해서 결정해 줘야만 하고 타인이나 어떤 일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야말로 돈키호테, 있지도 않은 문제점들을 발견해서 대응하려 드는 사람이라고 여겨집니다.
당신을 가까이서 잘 아는 사람들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 외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을 지루하다고 볼 것입니다.




----------------------------------------------------------------------------
수미언니 미니홈피 방문했다가 있길래 ㅎㅎ
난 47점.
흐음.. 대략 맞는걸까?aa

아아- 암튼 심심한 분들은 한 번 해보시어요 ^-^



Posted by nobadinosemi.
, |

우연히 링크를 따라 가다 제목이 재미있어서 클릭했는데 흐음.. 재미있는 삶을 사시는 분이구나 싶더라.
훌륭하시기도 하고-
뭐, 기사가 얼마나 진실을 잘 전달하는지와 상관없이 사실만을 놓고 본다 해도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해.
바른 삶을 살아야지!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의욕을 가져다 주더라고...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4/2008040400932.html


  • [Why] 강인선 Live 송명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 "대낮에 복면쓰고 남의 가슴에 칼을 꽂지만…"
  • 강인선 insun@chosun.com
    입력 : 2008.04.04 14:47 / 수정 : 2008.04.05 15:22
    • 흉부외과 의사이자 벤처 사업가인 건국대학 병원 송명근 교수(57)를 인터뷰하기로 하고 취재를 시작해보니 희한한 이야기들이 들렸다. 어느 날 환자 가족이 입원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쏜살같이 나타난 송 교수가 레지던트의 뺨을 때리면서 "도대체 입원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고교시절 '시험의 달인'이었던 송 교수가 서울대 입시에서 수석을 못 하자 너무 분해서 입학식에도 가지 않고 한강변을 배회했다고도 했다. 유능한 의사이긴 하지만 워낙 독주하는 스타일이라 동료 의사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발명해 외국에서 크게 인정받은 판막기능 보조장치는 국내에선 별로 사용하는 의사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의사 사회에서 누구를 섣불리 '최고'라고 불렀다간 난리가 난다고 경고해준 사람도 있었다.
    • 건국대 병원 중앙수술실에서 다음 수술 준비를 하고 있던 송명근 교수가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송 교수는 지금까지 8000번이 넘는 심장수술을 했다. ☞ 동영상 chosun.com 최순호 기자choish@chosun.com
    • '매력적인 카리스마'냐, 아니면 '자기도취에 빠진 괴팍한 성깔'이냐, 궁금해하면서 건국대 병원 12층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사무실 창가엔 '정확한 판단, 치밀한 계획, 과감한 실천, 철저한 사후평가'란 문구가 담긴 나무패가 놓여 있었다.

      푸른색 수술복 차림의 송 교수는 사진에서 본 것보다 풍채가 좋고 안색이 밝고 여유가 있었다. 그동안 의학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성격의 의사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오히려 성실하고 지루한 모범생 스타일에 가까웠다.

      송 교수는 요즘 하루에 네다섯 번 심장수술을 한다. 한번 시작하면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다섯 시간을 넘긴다. 엄청난 몰입과 집중의 시간이다.

      "어젯밤엔 10시쯤 대동맥이 파열된 환자가 들이닥쳤어요. 자정에 수술을 시작해서 새벽 5시쯤 끝났어요. 어떻게 그 오랜 시간 집중을 하냐고요? 수술방은 전쟁터예요. 매 순간 생사가 왔다 갔다 합니다. 환자는 물론 그 가족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생명이 소생하느냐 꺼지느냐가 내 손에 달려있어요. 무한책임을 느끼는 순간이지요."

      ―심장수술을 8000번쯤 하면 어떤 경지에 오릅니까?

      "실험하느라고 돼지 심장 수술한 것까지 합하면 1만 번은 되지요. 이젠 수술실에 들어설 때 전혀 두렵지 않고 편해요. 심장이 훤히 보인다고 할까요. 뭐가 문제인지 금방 알아요. 심장은 못 고치는 게 없어요. 최악의 경우 다른 심장으로 이식하면 되니까요."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실패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심장은 괜찮아졌는데 뇌졸중이 생긴다든지 식도가 파열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요. 그럼 왜 그렇게 됐는지 계속 연구해요. 지금까지 저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르쳐주지 않은 환자는 없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의학이 발전하는 거고요."

      송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로 유명해졌지만, 벤처 사업가로 돈을 벌었고 그렇게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더 주목을 받게 됐다. 작년에 자신이 죽으면 2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유언장을 써서 2002년에 공증까지 마쳤다는 사실을 공개하자 곳곳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그의 결심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특히 송 교수가 "재산이 갑자기 불어나니 욕심이 생겨 마음이 흔들릴까봐 아예 쐐기를 박으려고" 이 사실을 공개했다고 고백하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자동차는 신차 '제네시스' 출고 1호차를 그에게 선사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그를 취임식에 초청했다.

      ―재산을 사회 환원하기로 한 후 주변에서 좀 다르게 봅니까?

      "처신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제 재산이 어느 정도라는 게 구체적으로 알려지니까 사람들 태도가 달라지더라고요. 예전엔 동창회에 가서 20만원 정도 내던 기부금을 이젠 몇백 만원 단위로 내야 돼요. 조용히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게 됐다고 집사람한테 야단 좀 맞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번 돈은 환자들을 진료하다가 얻은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그러니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까?

      "어느 날 특실에 회진을 갔는데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요. 유학을 보냈는데 학위도 제대로 못 딴 아들이 돌아와서 수시로 돈만 축내더니, 심장수술 한 지 이틀 된 아버지에게 통장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어요. 안 그래도 걱정이 돼 통장을 매트리스 밑에 깔고 있던 노인은 그 통장을 빼앗기고 대성통곡을 하더라고요. 돈을 잘못 주면 자식을 망쳐요. 또 제가 아는 의사가 갑자기 죽는 걸 보고 정리를 좀 하자는 생각도 들었고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더라도 내 권리는 내가 정당하게 행사하고 싶었거든요."

      ―당장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십니까?

      "제가 원래 도우려고 했던 목표에 맞는 분들이면 도와드리려고 하지요. 그리고 저는 술도 골프도 안 하고 매일 수술하고 늦게 퇴근하니까 어차피 돈 쓸 데도 없어요."

      송 교수는 앞으로 얼마나 불어날지 모르는 재산을 사회 환원하기로 약속하면서 심장병 연구, 소외된 노인과 버려진 고아들을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송 교수는 수술실, 외래진료실, 사무실,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한다. 한때 골프를 쳤지만 골프 약속을 지키려면 환자에게 소홀하게 될 것 같아 포기했다. 그래도 "은퇴 후 6개월만 연습하면 수십 년 골프 친 사람도 다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1986년 미국서 귀국한 후 큰 대학병원이 아니라 부천 세종병원에 가기로 했을 때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던데요.

      "미국에 있을 때 저를 아껴주셨던 심장판막 수술계의 권위자 앨버트 스타 교수가 제가 귀국할 때 '유명한 병원으로 가지 말고 네가 가는 병원을 유명하게 만들라'고 하셨어요. 스타 교수 자신이 그렇게 사셨어요. 의학계의 메카인 존스 홉킨스 대학에 가지 않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오리건 대학에서 심장센터를 키웠어요. 젊은 사람이 일을 하기 어려운 건 층층시하의 환경 때문인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세종병원에 가는 걸 반대한 분들께 '제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봐달라'고 했어요. 심장수술 연 100회 하던 병원을 2년 만에 700회 이상 하는 병원으로 만들었지요."
    • 송명근 교수는 자신이 일하는 원칙 4가지를 사무실에 걸어두고 늘 되새긴다. /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 ―18년간 일하던 서울아산병원을 떠나신 이유는 뭡니까?

      "사람들이 자꾸 나를 원로 대접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일을 많이 했으니까 이제 쉬라고 그래요. 그게 뒷방 늙은이 하라는 거 아닙니까? 내 인생의 목표는 돈이나 쉬는 게 아닙니다. 70세까지 메스를 들고 현역으로 일하는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현장을 찾아가신 겁니까?

      "또 한 가지 있지요. 아산병원처럼 큰 병원엔 여러 과가 있으니까 골고루 지원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건대 병원에선 심장 분야에 집중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덕분에 짧은 시간에 세계 최고 수준의 가장 안전한 시설을 갖출 수 있었어요. 큰 조직에서라면 아주 오래 걸렸을 결정이지요. 게다가 평생 병원장 대접을 해준다는데, 기자 양반 같으면 거기로 안 가겠어요?"

      ―교수님이 '독선적'이란 평도 있더군요.

      "독선적으로 행동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연구를 해보자는 주장은 했어요. 그래서 그런 비판이 나왔을 수 있지요. 우리나라에는 이상한 사대주의 같은 게 있습니다. 외국서 해본 연구는 다 믿으면서 우리나라에서 한 것은 안 믿으려고 해요. 의학계는 새로운 시도에 대해 보수적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넘어서는 과정에서 장애물이 없을 수는 없어요."

      ―어떤 장애가 있었나요?

      "처음에 심장이식 하자고 했더니 어떻게 심장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느냐고 하고, 외과의사가 그런 걸 왜 하느냐고 하기도 하고요. 연구도 투자인데 안 하려고 하지요. 한국에서 뭘 먼저 해보는 것도 꺼리는 분위기고요."

      ―의사들 간에 경쟁이 심해서 교수님이 질투의 대상이 된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요.

      "제가 마흔한 살에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했습니다. 젊은 사람이 독주하니까 어떤 분들에겐 눈엣가시였을 겁니다. 그래도 저를 흉부외과로 이끌어주신 서울대 이영균 교수님과 서울아산병원 민병철 원장님께서 늘 저를 보호해주시고 후견인 역할을 해주신 덕분에 이만큼 됐지요."

      ―심장이식 수술 성공 등 한국 최초 기록을 많이 갖고 계십니다. 우연의 결과일 리는 없고 큰 시나리오 안에서 단계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스타 교수께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첫 10년은 과감하게 일해서 너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라. 그래야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그 다음 10년 동안은 전력 투구해서 일을 확대시켜라. 그리고 마지막 10년은 그때까지 한 일을 꽃피우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제가 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됐지요."

      ―이제 그간 한 일을 꽃피우는 세 번째 10년에 도전 중이시군요.

      "앞으로 2~3년 안에 건대 병원에 또 하나의 세계적인 심장센터를 만들고 수술방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안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24시간 언제든 의사들과 연락이 될 수 있게 하고요."

      ―스타 의사 한 명 데려온다고 병원 수준이 순식간에 그렇게 올라갑니까?

      "그게 리더십이에요. 저는 초야에 묻혀있는 유능한 의사들을 찾아내고 시스템을 바꿔가요. 세종병원 때 이미 보여줬지만 그렇게 해서 병원이 한번 도약하면 계속 더 좋은 병원으로 발전하는 겁니다."

      ―현실에선 힘들고 고된 흉부외과 지원자가 거의 없다는데, 최근 방영됐던 의학 드라마 주인공은 흉부외과 의사인 경우가 많았어요.

      "생사의 기로에서 일하는 직업이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지난주엔 심장이식 수술을 2번 했고 대동맥 파열된 환자를 2명 수술했습니다. 다섯 시간 수술하는 동안 환자의 체온을 15도로 떨어뜨린 상태에서 심장을 멈춰놓는 순간이 30~40분 정도 되는데 그때 엄청나게 급박하지요. 환자를 죽였다 살리는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심장은 '마음'이란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심장이식을 해서 다른 사람의 심장을 갖고 사는 건 왠지 다른 장기이식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심장을 바꾸면 성격이 변한다는 이야기가 있긴 한데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건 아니에요. 느긋한 사람이 아주 성질 급한 사람의 심장을 이식 받으면 좀 차이를 느낀다고는 해요. 그 심장의 전(前) 주인이 수십 년 유지해온 패턴이 있으니까요."

      ―성질이 급하십니까? 정말 레지던트의 뺨을 때린 적이 있으세요?

      "절대 아닙니다. 늘 불평불만인 환자가 있어 겁을 주느라고 레지던트를 위협하는 척한 적이 있어요. 그게 와전됐겠지요. 저는 늘 극한 상황에서 일하니까 침착하려고 애를 씁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선장이 흔들리면 안되니까요. 사자의 대담함, 여우의 지혜, 곰의 추진력이 다 있어야 합니다."

    • 송명근 교수가 건국대 병원 수술실에서 심장수술 과정을 강인선 기자(사진 오른쪽)에게 설명하고 있다. / 최순호 기자
    • ―수술에 대해 타고난 재능과 감각을 가진 외과 의사들이 있습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금방 잡아낼 수 있는 직관 같은 게 있어요. 수술을 잘하는 의사들은 대개 예술적인 재능이 있어요. 멀리서 환자를 봐도 본능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요. 저는 아무리 시끄러운 데서 진찰을 해도 청진기로 들려오는 소리에서 차이를 구분해요. 제가 청진기로 진찰하는 게 때로는 CT(컴퓨터 단층 촬영)보다 더 정확할 때도 있고요."

      ―그런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려면 자기관리가 중요하겠습니다.

      "흉부외과 의사가 전날 밤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지 않고 수술방에 들어온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대낮에 복면을 쓰고 다른 사람 가슴에 칼을 꽂는 직업은 두 종류밖에 없어요. 하나는 흉부외과 의사, 또 하나는 강도지요. 전날 술 먹고 수술하는 의사는 강도와 다를 바가 없어요."

      ―운동선수들 관리하는 것과 비슷하군요.

      "몸을 막 굴리면 안 됩니다. 저는 혹시 손이 떨릴까봐 수술 전엔 커피도 안 마십니다. 수술방에서 몇 시간씩 서있어야 하니까 걷기 운동을 많이 하고요. 손의 움직임이 유연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땐 여러 종류의 공을 들고 팔과 손 운동을 해요. 생활도 단순해야 하고요."

      ―오늘날의 '송명근'을 만드는 데 선친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시험에 '모래는 어디서 가져오나'라는 문제가 있었어요. 답은 '강'인데 저는 '영진상회'라고 썼어요. 집에서 공사할 때 그곳에서 모래를 가져오는 걸 봤거든요. 아버지는 제 설명을 다 듣고는 '그래 네 말도 맞다'고 하시면서 68점 맞아온 시험지를 다시 채점해 96점을 주시더라고요. 그런 아버지 덕에 저는 평생 호기심을 죽이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왜 흉부외과 의사가 됐습니까.

      "어려서 노벨상 타는 게 꿈이었어요. 그럼 연구를 해야 하는데, 제가 의과대학 다니던 시절엔 연구비란 게 없었습니다. 스스로 벌어서 투자해야겠다 싶어서 약리학을 하려고 했어요. 예과 시절에 종로 한약재상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 약재로 개발할 게 없을까 실험을 해보느라고 안 먹어본 약재가 없어요. 그러다 몸을 상한 적이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약리학으로 그런 꿈을 이루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곧 포기하고 흉부외과로 갔지요. 그때는 심장수술 하면 두 사람 중 한 명이 죽는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미국으로 갔지요."

      ―'시험의 달인'이시라면서요?

      "예과 1학년 때 아버지가 의대엔 수재들만 모이니까 제가 공부를 잘 못하는 것 같다고 공부 좀 하라고 하시기에, 녹음기로 강의 녹음하고 칠판 사진 찍고 잘 정리한 노트를 다 복사해서 달달 외워 모두 A학점 받았지요. 아버지께 마음먹으면 언제든 1등 할 수 있으니까 공부하란 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어요. 저는 성적을 위해 공부한 적은 없어요. 관심 있고 흥미를 느끼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공부를 즐기는 체질입니다."

      ―앞으로 꿈꾸시는 건 뭡니까?

      "의사로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최선을 다해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해 수백, 수천 명을 살리는 연구도 중요합니다. 지금 새로 개발하고 있는 것이 10가지 정도 됩니다. 심장 치료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삶의 목표에서 과히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어요. 새로운 걸 발명하고 허가를 받고 그러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젠 성과를 거둘 때가 됐지요. 국제적인 상 하나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명근 교수는?

      송명근 교수는? 1992년 11월 국내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이후 초저체온 대동맥 수술, 심장과 신장 동시 이식, 대동맥 판막 성형술 등을 국내 최초로 성공시키면서 심장수술 분야의 신기록을 경신해왔다. 부천 세종병원,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다가 작년 평생 병원장급으로 대우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건국대 병원에 스카우트 됐다. 심장수술용 대동맥 인공판막의 반값 정도밖에 안 되는 판막기능 보조장치 'SS-ring'을 개발해 200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 의사의 길을 가는 1남1녀에게 전세금 등으로 각각 3억원씩 물려주고 나머지 돈은 다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오리건대 부속병원 전임의, 베일러대 병원 임상조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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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서 찍되, 분위기 깨지는 말것!
    한겨레
    » 영화 〈1724 기방 난동 사건〉촬영현장. 스틸카메라를 든 사람이 사진가 서원삼씨다.
    [매거진 Esc] 영화촬영 막간 이용, 인상적인 순간 잡아내는 ‘스틸 사진가’의 세계

    극장에서 영화가 끝났는데도 자리를 못 떠날 때가 있다. 경쾌하거나 혹은 애잔한 음악과 함께 스크린 위에 수십 장의 사진들이 등장할 때가 그렇다. 그 사진들은 마지막까지 관객을 붙잡아 둔다. 영화 촬영현장에는 ‘영화 스틸 사진가’가 있다. 그들의 작품이다.

    <왕의 남자> 제작발표회 사진이 준 효과


    ‘영화 스틸 사진가’(이하 사진가)는 움직이는 영화의 모든 것을 정지된 화면에 담는 이다. 배우들의 모습, 중요한 장면, 무대 뒤의 모습, 제작진의 궂은 일 등.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도 개봉 때까지 그들은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그들이 찍은 사진은 영화 홍보를 위해 아낌없이 사용된다. 보도자료, 극장 전단지, 책자, 포스터 등.

    촬영이 끝나고 가편집된 예고편이 나오기까지 길게는 석 달, 짧게는 한 달이 걸린다. 그 기간 사진가가 찍은 웅장하고 감동적인 사진들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알리고 기대감을 심어준다. 영화 전문 마케팅 회사 ‘영화인’의 서경은(32) 팀장은 “지속적인 인지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영화 〈1724 기방 난동 사건〉의 한 장면. 5월말 개봉 예정이다.
    » 영화 배우들과 친목은 사진가에게 필수다. 〈1724 기방 난동 사건〉촬영 현장.
    2005년도 개봉해서 이듬해까지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왕의 남자> 제작발표회에서 사진은 한몫을 단단히 했다. 영화사 ‘이글스픽쳐스’는 여러 장의 사진으로만 영화를 보여주는 슬라이드 쇼를 했다. 촉촉한 감동이 번졌다. 정지된 화면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아름다움이 영화 개봉 전부터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첫인상은 사진으로 결정된다. 영화사의 마케팅 부서가 실력 있는 스틸 사진가를 찾는 이유다.

    과거에는 그 역할이 더 컸다. 60, 70년대 유일한 홍보 수단인 신문에서 잘 찍은 영화사진은 중요했다. 지방 극장주들은 ‘스틸북’만을 보고 영화를 선택했다. 카메라를 가진 이도 적었고 현상과 인화까지 맡았던 그들의 책임은 컸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영화시장의 팽창과 함께 좀더 세밀한 마케팅 기법들이 도입되고 있다.

    그렇다면 화려한 영화현장에서 배우들과 호흡하는 ‘영화 스틸 사진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영화사는 대부분 ‘잘 찍는다’고 소문이 난 사진가를 섭외하고 편당 계약을 한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영화사마다 찾아다니는 사진가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떤 식이든 영화에 경험이 있는 이가 선택된다. <기방 난동 사건>을 찍는 사진가 서원삼(38)씨는 영화 잡지 ‘스크린’에서 7년 동안 사진기자로 일했다.

    » 김장욱씨가 촬영한 영화 〈인어공주〉.
    배우에 잘 동화될수록 좋은 작품 나와

    영화배우와 현장 스태프들과의 호흡도 중요하게 평가한다. <인어공주>, <웰 컴 투 동막골> 등을 찍었던 사진가 김장욱(39)씨는 “사람과의 친화력, 현장 적응능력, 순발력”을 사진가의 능력으로 꼽았다. 그는 제작진과 친하다. 중요한 장면에서 촬영감독은 그를 찾는다. 배우와도 친하다. 영화 <인어공주> 때였다. 그가 찍은 고두심과 전도연이 다정하게 포옹하는 사진은 반응이 좋았다. 그 사진은 촬영장면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두 배우가 쉬는 사이 찍은 것이란다.

    실제 촬영이 시작하면 사진가들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사진을 잡아내고자 고군분투한다.

    사진가 이재혁(38)씨가 말하는 영화 스틸 사진은 인물사진이란다. 주로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고 그들의 감정을 부각시킨다. 카메라 보디 2대, 렌즈 7개를 사용한다. 줌렌즈는 자주 쓰지 않는다. 영화 <타짜> 때만 줌렌즈를 사용했단다. “타짜는 모든 장면들이 좁은 공간에서 급하게 벌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촬영 중인 <연인>을 찍으면서 배우보다 더 눈물을 쏟았다. 카메라가 배우에 잘 동화될수록 좋은 사진이 나온다.

    » 사진가 이재혁씨가 촬영한 영화 〈타짜〉포스터.
    영화 현장은 대부분 동시녹음을 한다. 모든 제작진들이 긴장하는 순간에 ‘찰칵’ 하는 셔터 소리는 영화판에서 벼락 맞을 일이다. 사진가들은 장면을 연습할 때, 촬영 직전, 막 끝난 후, 엔지가 났을 때 셔터를 누른다. 배우들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사진가가 재촬영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저 그림자처럼 기회를 얻어 찍을 뿐이다.

    독특한 느낌의 사진을 얻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서원삼씨는 “카메라에 내장된 캘빈도(색온도)를 낮춰 슬픈 배우의 얼굴을 더 붉게 찍는다. 감정이 더 느껴진다.” 그는 다른 사진가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캘빈도 브라케팅을 한다.

    » 〈연애소설〉한 장면. 사진가 이재혁씨가 촬영했다.
    감정 느껴지도록 색온도 이용하기도

    지난 2월9일, 영화 <연인>의 촬영 현장을 찾았다. 북한강 칼바람이 제작진들의 손을 얼린다. 아침 7시30분 막 동이 트기 시작하는 신청평 휴게소. 배우 백윤식이 도착하자 모든 스태프들의 손이 바빠졌다. 차가 달리는 국도의 견인차 위에서 영화촬영 감독의 카메라는 돌아간다. 이재혁씨도 급하다. 출발하기 전에 잽싸게 견인차에 올라타 짧은 순간에 몇 장을 찍고 내려온다. 틈틈이 견인차 구조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얼굴도 찍는다. 배경이 되는 강변의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도 담는다. 이제 국도를 쌩쌩 달리고 돌아올 감독과 배우를 한동안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의 눈에서 영화를 아끼는 성실성이 느껴진다.

    마릴린 먼로를 떠올리면 지금도 영화 <칠년만의 외출>에서 환풍기 위에서 치마를 부여잡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바로 영화 사진의 힘이다.

    » 〈우리동네〉한 장면. 사진가 김장욱씨가 촬영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영화 사진 김장욱·이재혁·서원삼 제공



    출처: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2694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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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노레 도미에-파리의 풍자꾼

    2008년 오노레 도미에 탄생 200주년展

    2007_1214 ▶ 2008_0131 / 일요일, 국공일 휴관



    오노레 도미에_철도열차 안에서 4_종이에 석판화(L.D.3299)
    르 샤르바리-1864년 8월 12일
    프뤼돔 씨: "질식해 죽을 위험은 있어도 암살될 염려 없는 삼등객실 만세."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울대학교 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214_금요일_02:00pm

    관람시간_10:00am-6:00pm / 입장마감_05:30pm / 선거일 휴관
    관람요금_3000원 / 관악구민, 단체20명 이상, 예약 필수_2000원
    서울대학교 학생 및 교직원_무료
    교육프로그램_MoA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시리즈 6(www.snumoa.org 참고)

    협력_이타미(伊丹)시, 이타미 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 1,3,4,5 갤러리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
    Tel. 02_880_9504~5
    www.snumoa.org






    오노레 도미에가 태어난 1808년부터 그가 생을 마감하는 1879년 사이 프랑스는 크고 작은 시민항쟁들이 끊이지 않는 정치적 질풍노도의 시대를 경험했다. 이러한 시민항쟁들은 파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민계층이 세속제의 보수왕권의 종말을 요구함과 동시에 스스로만을 살찌우기 바쁜 귀족층의 횡포에 대항하여, 노동을 할 권리와 그 대가로 빵을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의 보장을 주장한 것으로, 많은 시민들의 사상과 구속, 감금이라는 희생을 치르며 진행되었다. 1830년 7월 혁명, 1832년 파리폭동, 1848년 2월 혁명, 6월 혁명 등은 봉건군주제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민주주의를 구축하려는 시민의, 나아가서는 시대의 움직임으로 기억된다. 이 격동의 중심지 파리에서 도미에는 타락한 정치가들을 풍자화로 날카롭게 비판하는가 하면 생활고에 허덕이면서도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소시민들의 모습을 애정 어린 따스한 시선으로 기록하였다. 마르세이유의 액자 집 아들로 태어난 도미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던 유화작업을 대신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1829년부터 일간지에 정치풍자화를 기고하기 시작한다. 국왕의 살찐 얼굴을 서양배에 비교하여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도미에의 캐리커쳐는 서민층에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보수파 정부에게 정치범으로 몰려 투옥당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후로 도미에는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내용으로 주제를 바꿔가며, 파리시민들의 일상과 여가생활, 사랑과 자녀교육 등을 유머 가득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는 석판공방에서 견습생활을 하던 21살 때부터 시력저하와 곧 이은 시력상실로 더 이상 작품 제작이 불가능해진 65살까지, 많게는 일년에 약 125점(3일에 한 작품 꼴)을 제작, 일생 동안 총 약 4천여 점의 석판화를 남겼다. 도미에에게 있어 이 작품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임과 동시에 프랑스 역사의 기록이자 소시민에게 주어진 발언의 장이었으며 당대를 살아가는 한 파리지안으로서의 자화상이기도 하였다. 오노레 도미에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 이타미시립미술관과의 교류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에서는 1830년 7월 혁명 직전에 제작된 작품번호 1번에서부터 1868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전쟁을 암시하는 말년의 작품까지 총 146점의 석판화를 [모던 파리], [부부와 가족], [여행과 여가], [정치풍자]의 네 개의 소주제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당시의 정치가들의 얼굴을 희화화해서 재현한 풍자조각, 도미에의 초기 유화양식을 엿보게 해주는 회화작품을 포함한 총159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오노레 도미에_살롱의 관중 9_종이에 석판화(L.D.2299)_≪르 샤리바리≫-1852년 5월 14일
    “경쟁자의 작품을 검토하는 예술가들”


    L.D.는 Loys Delteil의 약자로 도미에의 석판화 전체 도록의 저자명이다.
    모던 파리 ● 19세기 중엽의 파리는 좁은 돌담골목에 오수가 흐르던 중세의 도시에서 개선문이 들어서고 방사선의 대로 불르바드가 뻗어나며 실크해트와 거대한 드레스를 차려 입은 중산계층이 도시를 활보하는 모던한 도시로 거듭난다. 도미에는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와 미술전람회인 살롱, 식물원을 찾은 관광객을 비롯하여 새로이 등장한 세력인 여성운동가들의 활약상까지 빠짐없이 관찰하였다. 〈살롱의 관중〉은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지에 1852년 4월부터 5월까지 연재된 11점의 프린트 연작이다. 파리에서 매해 열리는 미술 전람회인 살롱은 약 백만 여명의 방문객을 끌어 모으는 미술 축제로, 수백 명의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예를 들어, 1834년의 살롱에는 첫날에만 3만 여명의 방문객이 모였다. 두 달이라는 전체 기간 동안 총 백만 여명의 관중이 전시를 보러 왔다. 어떤 날에는 티켓 가격이 20수(약 만원)로 내리거나 무료인 경우도 있어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살롱은 새롭고 현대적이며 전위적인 미술가들에게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화가들에게도 절호의 시장이었다. 사설화랑과의 연결이 쉽지 않은 진보적 화풍의 작가들에게는 특히 경제적으로 중요한 장소였다. 심사위원은 작가의 미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보수적인 심사위원에 의해 살롱에서 한 번 거절당한 작가는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종종 살롱에서 거절당한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가 열리기도 했는데, 1855년에도 쿠르베의 작품이 살롱에 전시되기에 너무 혁명적이라 여겨져 거절당하자, 살롱 밖에서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보들레르는 살롱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우리 시대 파리에서 들라크루아에 비할 수 있는 작가는 두 명뿐이다. 캐리커쳐 작가인 도미에와 앵그르다. 이 세 작가의 공통점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노레 도미에_결혼에 관한 풍경 7_종이에 석판화(L.D.630)_≪르 샤리바리≫-1839년 6월 9일
    "결혼한 지 6개월 공감은 영혼의 결합"


    부부와 가족 ● 도미에가 그리는 부부와 가족상에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인간의 모습이 묻어난다. 19세기파리에서도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기쁨은 두 배로, 때로는 미움도 두 배로 증폭되어 끊임없이 다투고 화해하는 나날의 반복이었나 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둘을 잇는 것은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자식들이다. 〈결혼생활〉은 60점의 연작으로 1839년 5월 19일부터 1842년 10월 12일 사이에 ≪르 샤리바리≫지에 게재되었다. 이 연작이 발표되었을 때, 도미에는 그의 부인인 알렉산드린 다시Alexandrine Dassy와 아직 결혼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연작에 상냥한 아내로서 여러 차례 등장한다. 당시 파리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남성이 여전히 과거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던 때에 여성 해방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므로 이 연작에 도미에가 묘사한 사소한 말다툼이나 분쟁들은 당시 대중들에게 익숙한 것이었고 특히 이웃의 결혼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도미에의 판화를 정리한 로이스 델테이유 Loys Delteil는 ≪르 샤리바리≫지의 1월 판에서 이 연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파리의 가족들은 도미에의 작품을 통해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비판정신을 본다. 그는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불행과 재난들을 진솔하게, 그러나 희극적으로 그려낸다. 이 예술가를 뛰어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무자비한 솔직함이다. 독신으로서의 삶을 끝내려고 고심하는 자들에게 이 연작은 위로가 될 것이며, 모든사람들에게, 기혼자들에게도 또한 웃음을 선사할 것이다.” 이 직후에 〈여성사회주의자〉와 〈청탑파 ??派〉가 등장하여 남성 우월주의를 끝내고, 남녀 평등을 주장했다.




    오노레 도미에_철도열차 안에서 6_종이에 석판화(L.D.3301)_≪르 샤리바리≫-1864년 8월11일
    "즐거운 여행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여행과 여가 ● 19세기 파리의 휴일을 담은 모습에서는 더 이상 농업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중산노동자층들의 야외 나들이가 중요한 주제가 된다. 파리외곽의 호수나 전원지대를 하루에 왕복 할 수 있게 해준 철도열차의 대중화는 도미에 이후의 인상파화가들에게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철도열차 안에서〉는 시사일간지 ≪르 샤리바리≫지에1864년 8월과 9월사이 게재되었던 6점의 판화 연작이다. 고속으로 파리와 파리 근교를 잇는 증기기관차가 등장함에 따라 여유 있는 파리인들 사이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교통수단에 몸을 싣고 교외로 나가 주말을 즐기고 돌아오는 짧은 여행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하지만 새로운 기차 여행은 항상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승객들은 자주 강도를 당했고, 때문에 이 새로운 교통수단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단둘이 일등칸에 탄 승객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앉아있고 각자의 손에는 권총까지 쥐어져 있다. 당시의 열차는 차량 간에 통할 통로가 없고 밖에서 열쇠를 거는 형태였으므로 일단 출발하면 다음 정차역까지 완전한 밀실상태였다. 따라서 실제로 밀실상태의 일등칸 속에서 폭행이나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며 유럽의 추리소설들은 이런 사건들을 주제로 쓰기도 했다. (이타미시립미술관 ‘도미에’ 도록 77번 참조.)




    오노레 도미에_L’Association Mensuelle_종이에 석판화(L.D.131)
    월간석판화협회-1834년 1월
    "입법부의 배.1834년 타락한 각료석의 풍경."


    정치풍자 ● 도미에의 오랜 석판화 작업은 정치풍자화에서 시작하여 정치풍자화로 끝을 맺는다. 진실을 직시하고 거침없이 부정을 고발하는 도미에의 통쾌한 이미지들은 대부분이 문맹이던 당시 서민들의 뇌리에 그 어느 칼자국보다도 강력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도미에의 정치풍자화들은 시민의식의 고양을 통해 궁극적으로 프랑스의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작품번호 L.D.131은 도미에의 가장 중요한 판화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월간석판화협회에서 판매한 이 석판화는 1832년 8월에서 1834년 7월에 걸쳐 24점이 자금조달의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다. (이타미시립미술관 ‘도미에’ 도록 39번 참조.) 이 판화는 이들이 대변해야 할 시민들의 민생고와는 멀리 떨어진 자아도취적이고 거만한, 스스로의 명예와 권리를 남용하는 시민대표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 판화는 1834년 입법의회의 정확한 재현으로, 구성원들은 모두 풍자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그들의 대부분은 도미에의 이전 작품에서 개별적으로 다뤄진 적이 있다. 그들은 이 극장과도 같은 공간에 한데 모여, 당시 정치계의 보수성, 부조리함, 무의미함 등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국가를 통치하는 책임을 질만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자격이 부족해 보이는 정치권의 대표들과 직면했을 때 충격을 받게 된다.이 작품의 부제가 "chambre improstituee," 즉, ‘타락한 각료석’이라는 것을 알면 더 재미있어진다. ≪라 트리뷴 La Tribune≫지의 편집장 아르망 마라가 이 표현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루이 블랑에 의하면, 그는 그가 출간하는 신문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얼마나 이 매음굴에 속아왔고 조롱 당해왔는지!” 이후 의회는 ≪라 트리뷴≫을 고소했는데 재판에서 신문사에게 승소하였다. 하지만 ‘타락한 각료석’이라는 표현은 기억되었다. ≪라 카리카튀르 La Caricature≫지와 ≪르 샤리바리≫지의 발행인인 필리퐁 Philipon은 이 새로운 표현에 빗대어 "입법부의 배 Ventre legislatif"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판화는 당시대를 보여주는 자료일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놀라운 작업인데, 도미에는 35명의 의원들 모두를 4열의 반원형의 의회석에 끼워 넣으면서도, 화면에 과도하게 넘쳐 보이지 않게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트랭스노냉 거리 Rue Transnonain"와 함께 앞으로 일어날 예술에서의 새로운 사실주의를 예시하는 초기 작품으로 간주된다. ■ 서울대학교미술관 모아(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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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 바다, 산악지형, 좁은 땅, 어느곳에도 지을수 있는 집
    한 폴란드 건축설계회사가 프론트 아르키텍츠(Front Architects)가 디자인한 싱글허즈, 가운데 한개의 폴을 세우고 집을 짓는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생활하는 싱글족들을 겨냥해 만들었다고 하며, 지면만 있으면 거의 모든 장소에 끼워맞출 수 있는 길거리의 대형 광고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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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 나 하나만 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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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ng Life

    scrap / 2007. 8. 30. 17:4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프루스트식 리얼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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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07.9.26,27,28(수,목,금), 20시, 100mins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06 에딘버러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메인 프로그램 선정
    2006 발틱 하우스(Baltic House) 관객상 수상
    2005 제45회 MESS 황금 월계관 상 수상 (연기 부문)
    2005 제39회 BITEF 그랑프리 수상

    유럽의 젊은 천재 알비스 헤르마니스(2007 유럽연극제 새로운 연출가상 수상)
    대사가 없으면 지루하다? 지루함을 침묵케 하는 아름다운 연극

    유럽 최고의 젊은 천재 연출가로 평가받는 알비스 헤르마니스는, 대사가 한 줄도 없는 그의 연극에 대해 '신체극'이라는 표현을 덧대자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연극은 오로지 대사만을 가졌다는 말인가? 감정과 시각적 인상들, 매 공연의 독특한 분위기는 대사와 똑같은 위치에 놓인 연극의 엄연한 요소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시대에 오직 연극만이 디지털화될 수 없는 형식을 가졌다고 말하는 그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을 통해 결코 마르지 않을 그만의 역량을 보여준다.

    국가: 라트비아
    연출: 알비스 헤르마니스(Alvis Hermanis)
    단체: 뉴 리가 극단(New Riga Theatre)

    * 2006 에딘버러 페스티벌 메인 프로그램 선정
    * 2006 발틱 하우스(Baltic House) 관객상 수상
    * 2005 제45회 MESS 황금 월계관 상 수상 (연기 부문)
    * 2005 제39회 BITEF 그랑프리 수상
    * 2007 유럽연극상 새로운연출가상수상

    먼지 쌓인 소품처럼 낡아진 노인들의 일상
    라트비아 리가市 무의탁 노인들의 찾는 이 없던 유품이 무대를 메우고 고독과 가난 속에 방치된 노인 5명이 쓸쓸한 공동주택을 거닌다.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급격한 전환을 앓은 라트비아 노인들이 겪은 건 단순한 체제의 변화가 아니었다. 산업역군에서 사회의 짐으로, 유익한 지식의 담지자에서 구시대에 집착하는 유물로, 선택한 바 없는 흐름에 밀려 이젠 먼지 쌓인 소품처럼 낡아진 노인들의 일상이 유럽이 주목하는 젊은 천재 알비스 헤르마니스(Alvis Hermanis)에 의해 무대화된다. 더 이상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선언이 유효하다면, 지금 이 시대 예술에게 중요한 건 새로우냐, 낡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성숙했느냐일 것이다. 현대자본주의시대에 가장 인기 없고 낡은 소재 ‘노년’을 다루는 젊은 연출가와 배우들의 깊은 울림은 가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의 예술축제, 극장의 숨가쁜 러브콜을 받아온 까닭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영원’ 혹은 ‘불멸’을 사는 노년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예리한 관객들은 알아차리겠지만, 노인들의 세계에선 모든 사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규칙을 알 수 없는 난해한 리얼리티 쇼에 던져진 듯한 노인들은 그들 삶의 오랜 동반자인 사물의 영혼을 표현한다. 유럽 최고의 젊은 연출가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알비스 헤르마니스가 만들어내는 시적 장면들은 한마디의 대사 없이도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영혼을 담아낸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시대에 오직 연극만이 사람들을 집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라 장담하는 알비스 헤르마니스의 작품을 한국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알비스 헤르마니스 (Alvis Hermanis)
    1997년부터 뉴 리가 극단의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있는 알비스 헤르마니스(Alvis Hermanis)는 연극을 통해 동서양의 포스트모던 미학, 이미지, 상징들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형식이나 스타일면에서 기성 작품과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오디오와 비쥬얼 아트를 포함하여, 리얼리티의 새로운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비디오 프로젝션, 슬라이드, 표음문자를 사용한다. 대량생산, 스트레스가 만연한 현대에 뉴 리가 극단은 휴머니즘, 생명, 감성 그리고 소박함과 조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작품들은 그 준비 기간만도 1년이 넘고, 대규모 극장뿐 아니라 소극장이나 기타 다른 극장에서도 공연할 수 있도록 기획되고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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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싶은데 과천이랑 날짜가 겹친다.
    제일 바쁠때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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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서점주인들이 추천한 ‘이 여름의 책’

     

    Ete des libraires


    여름은 독서를 하기에는 부적절한 계절이다? 프랑스 서점상조합과 국립도서센터(CNL)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름은 바캉스와 각종 지역 축제가 펼쳐지는 계절이지만 이 계절 책읽기의 즐거움은 그에 못지않다고 강조한다.


    프랑스 국립도서센터(CNL)가 지원하며 서점들이 추천하는 이 여름의 우수 도서 12종에 프랑스 국내작품 6종, 외국작품 6종이 선정되었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고 싶은 책을 서점주인들의 설문을 통해 추천받았다.

    2006년 9월에서 2007년 2월 사이에 출간된 책 중 12종을 선정하였다. 선정 기준은 수상경험이 없으며 내용의 우수성에 비해 판매가 저조했던 책을 대상으로 한다. 추천 도서 12종은 프랑스 전역 약 130여 개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선정된 12종 중에는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프랑스 번역본도 포함되어 있다. 최미경, 장 노엘 쥐테 번역으로 쥘마 출판사가 펴낸 소설은 작년 프랑스 대형서점 프낙이 선정한 가장 주목받는 외국소설 10권에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 Ete des libraires

     

    프랑스서점조합(SLF) 회장 브누아 부주롤(Benoît Bougerol)은 “책은 소멸시효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사이 책의 평균 수명은 점점 단축되고 있다. 아무리 우수한 책도 출간 이후에 의당 그 책이 누려야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좋은 도서 몇 권을 골라내어 그 책들이 독자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책의 정글 속에서 방향을 못 잡는 독자들에게, 독자들과 마주칠 기회를 놓쳤던 수준 높은 작품들이 그들과 만나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이 단순한 아이디어는 문화전문방송인 프랑스 퀼튀르(France Culture) 디렉터이자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문화자문위원이었던 로르 아들러(Laure Adler)에게서 나왔다. 그녀가 서적상조합과 국립도서센터(CNL)에 이 생각을 제시하면서 사업은 시작되었고, 현재 재정적이며 조직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프랑스 퀼튀르 디렉터 로르 아들러 ◀


    프랑스 퀼튀르 디렉터 로르 아들러

     

    로르 아들러는 서점주인들이 최고의 독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을 다른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잘 알고 있다. 현재 서점은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다. 프랑스 인디(독립) 서점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서도 예외적인 부분인데, 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증대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문학 창작은 지탱된다. 글쓰기의 다양성과 작가들의 재능 보호를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베스트셀러화가 다른 양서들을 숨죽이게 만들면 안 된다.”

     

    <이 여름의 책>에 선정된 책들 중, 세 번째가 한국작가 이승우의 책

     

     

     

     

     

     

     

    ▶ <이 여름의 책>에

    선정된 책들 중,

    세 번째가 한국작가

    이승우의 책

     

    <이 여름의 책>을 선정하기 위해 프랑스서점조합(SLF)은 약 500개처 이상 되는 모든 조합원 서점들에게 메일을 발송했고 잡지 <파주(Page)>에도 공지를 했다. 10여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최종 12종을 선정했다. 이 책들을 6월 24일부터 7월, 8월 여름 휴가 기간 동안 전국 130여 개 서점에서 안내한다. 서점 유리창에 <이 여름의 책> 행사를 알리고, 서점 내부 탁자에 12종의 책을 진열하는 등. 올해가 첫 행사라서 어려운 점이 있지만 내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책에 대한 정보자료를 책을 구입하시는 독자에게 준다거나, 작가들이 직접 서점을 순회하면서 방문한다거나.

     

    국립도서센터는 융자 및 지원금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디(독립) 서점을 지원한다.

    인디(독립) 서점 설립·확장·사업 재개 지원과 도서 관련 축제·행사에 인디 서점 참여, 테마별 지원. 예를 들어 “느리고 판매가 어려운 분야”인 예술, 고전문학, 철학, 시, 인문사회과학, 연극에 대한 도서 지원 등.

     

    프랑스서점조합(SLF) 이사 파스칼 튀오(Pascal Thuot)는 국립도서센터의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디(독립) 서점들이 겪는 곤란을 이런 사업 하나가 요술 지팡이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문학 창작과 관계를 맺는 인디(독립) 서점을 위해서는 유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업의 의미는 서점이 문학생산에 있어 아주 특별한 시선을 갖는다는 것, 책을 좋아하고 책을 발견하기를 좋아하고, 읽기 좋아하며, 그것을 다른 독자들에게 알리기를 좋아하는 서점의 의견을, 그 독자적인 특성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도서 선택에 있어 완전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독자들과 함께한다는 것. 그들이 필요한 이유이다.  

     

    “문학 만세를 위하여, 인디(독립) 서점 만세를!”

     

    ※ 참고 : 프랑스 문화커뮤니케이션 2007년 여름특별호 보도자료

    ※ 글 : 강쌍구(혁신성과팀, sgkang@arko.or.kr)

    출처: http://www.arko.or.kr/home2005/bodo/sub/foreign_news.jsp?idx=36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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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코, 메세나, 문광부 등 문화예술계 웹사이트들에서 웹진을 받아보면 그 동네 동향을 알 수 있다.
    고 교수님께서 말씀을 해주셨지.
    확실히 많게는 하루에 한 번씩, 적게는 한 달에 한 번씩 보내주는 웹진을 보는 것은 주~욱 훓어 보는 것만으로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회원가입해서 웹진 구독을 추천!

    아르코 지난 웹진은 http://www.arko.or.kr/home2005/bodo/sub/pastbodo.jsp 서 볼 수 있음.



    Posted by nobadinos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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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debele Tribe

    scrap / 2007. 8. 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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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blog.empas.com/africaart/19837041


    아프리카한마당 준비하면서 이끌릴 수밖에 없었던 아프리카 부족, 은데벨레.
    가고싶다.
    저기 가서 딱 3년만 살면 좋겠다.
    영어가 공통어라니까 처음 가서 살더라도 큰 불편은 없겠지? 은데벨레어도 배우고, 색에 대해서도 배우고.
    돈 모아서 저기로 가고 싶은데 받아주려나? ㅠㅠ


    참, 사진은 무단펌질이므로 다들 쉿!




    Posted by nobadinos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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